[건강보험 체험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믿음을 주는 건강보험, 마음이 편해요

20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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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건강보장 4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나라의 건강보장제도가 질병의 치료 및 재활, 가족 행복 등에 도움이 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체험수기를 공모하였다. 그 결과 최우수작 1편, 우수작 2편, 장려작 3편으로 총 6편이 당선되었다. 그중 최우수작을 소개한다.

 

“믿음을 주는 건강보험, 마음이 편해요”

– 건강보장 40주년 건강보험 체험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박혜균

신부전을 앓는 나의 건강을 위해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에게 가장 힘든 일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고정적인 수입의 근로자에서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시골 생활을 하게 되니, 몸이 아픈 것보다는 돈에 대한 걱정이 더 많아져 ‘다시 도시로 나가야 하나?’하는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럴 즈음에 어머님의 갑작스런 치매 발병은 그러잖아도 힘든 우리 부부에게는 더 힘든 짐으로 다가왔고, 도시로 다시 나가는 문제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결국 2013년 연말을 며칠 앞두고 어머님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될 정도가 되어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시고, 아버님께서는 암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을 하시면서 남편의 하루는 병원을 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아버님의 병원비는 두 분의 기초연금과 아버님의 참전유공자 수당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어머님의 병원비는 온전히 우리 부담이었다. 별 수 없이 신장이식을 대비하여 챙겨 놓았던 비상금을 털어 어머님의 병원비와 우리의 생활을 꾸려 나가야 했다.

아버님께서는 1년여의 병원생활 끝에 2014년 11월에 돌아가셨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어머님의 기초연금을 어머님의 병원비에 보탰지만 수입이 거의 없는 형편이라 결국 나는 소액의 수입일지 언정 다시 집에서 하는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님만 찾아 뵈면 되어 병원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게 된 남편도 조금 더 일을 했지만 벌이는 도시에서의 수입만큼 미치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어머님이 의료 차상위로 지정이 되어 병원비 부담이 그나마 다른 사람에 비해 적다는 거였다. 하지만 각종 비품도 보호자 부담이었고, 병원에 갈때마다 간식도 가져가야 했기에 금전적인 고충은 여전히 존재했다.
남편은 도시에서 생활할 때처럼 수입과 지출에 대한 모든 것을 내게 일임 해놓고 있었고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 나때문에 쪼들리는 형편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어머님의 병원비가 이체되는 매월 1일이 되면 통장을 들여다보기가 무서울 정도의 압박감이 있었는데, 그 압박감이 때로는 부부싸움으로 돌출될 때도 있었다.

2015년 8월, 그날도 힘들게 병원비를 이체하고 나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남편이 종이 한 장을 건네 주었다.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 지급 신청서’였다. 언뜻 보기에도 돈을 준다는 것이라 두 눈을 뜨고 읽어보았지만 100% 이해하지는 못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고액·중증 질환자의 과다한 의료비 지출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일정기준을 넘으면 그 차액을 돌려주는 제도’라고 되어 있었다. 어머님은 차상위 의료 수급자라 소득1분위에 해당이 되어 120만원이 적용 상한액으로 나머지 금액인 260여만을 환급해주는 거였다. 260만원에 달하는 숫자를 보는 순간, “선물도 이런 선물이 없다!”는 탄성이 나왔다.

병원비에 대한 부담을 가지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적은 금액을 내는 것만으로도 나라의 혜택을 고스란히 입고 있는 것 같아 고마웠는데 덤으로 이렇게 환급까지 해준다니 우리 형편에는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친구는 ‘당연한 복지정책 아냐?’하면서 시큰둥해 했지만 신부전을 앓고 있어 후일의 병원비가 염려되는 내 입장에서는 비빌 언덕이 생겼다는 안정감도 얻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힘든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며 한탄했던 일이 무색할 만큼 이 돈은 내게 ‘어디선가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있음’을 알게 해 준 일등공신이 되고도 남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에 딱 맞는 8월의 선물인 셈이었다.
남편은 그동안 건강보험료를 내면서 ‘아까운 내 돈’이라는 탄식을 가끔 했다. 그러다가 내가 신부전으로 인해 매월 병원 진료를 받게 되면서 ‘이제 쌤쌤이가 되었다’며, 은근히 건강보험료 납부에 대해 ‘아까운 내 돈’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제도의 혜택을 보게 되니 ‘좋은 제도’라며,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며 좋아했다. 작년에도 어머님의 병원비 일부는 본인부담금상한제 환급금으로 돌려받아 병원비 부담을 많이 덜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 만으로도 건강보험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는데, 또 다른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작년 5월 31일 아침이었다.
“여보! 00병원으로 빨리 와” 새벽 6시에 수화기를 통해 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급했다. 왜 그러지는 물어볼 여유도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자 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이지만 그날따라 도로 공사를 하느라 한쪽 차선을 막아 놓아서 2~3분이 더 지체되어 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남편이 벌겋게 된 얼굴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화상이었다.
봄나물을 같이 장만하기로 하고 아침 일찍 이웃 마을의 친척집에 간 남편은 커다란 국솥을 들고 엎어지면서 얼굴과 팔 그리고 다리에 2도 화상을 입게 된 거였다. 병원에서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가깝다는 2시간 거리의 대구화상전문병원으로 진료 의뢰서를 작성해주었다. 화상 전문병원에서는 입원치료를 위한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잠깐만’하며 나를 제지했다.
“자세히 읽어봐. 비급여 치료가 많다고 하잖아. 그러면 병원비가 엄청 나올건데 흉터가 좀 남더라도 그냥 포항쪽 병원에서 치료받자”
“네? 지금 병원비가 문제예요? 이곳은 화상전문병원이라 흉터없이 깨끗하게 치료도 되니 그냥 입원해서 치료 받아요. 병원비는 모자라면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놓은 걸 다시 쓰면 되죠”

입원 이틀째에 원무과에서 연락이 와서 내려가니, 안면부 화상이 있어 중증환자 산정특례를 신청해준다고 했다.
10년동안 신장병을 앓아왔기에 투석이나 이식을 한 환우들이 산정특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중증환자 산정특례제도를 알고는 있었지만, 화상환자도 해당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때서야 제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10년전에 아버지께서 적용 받으셨던 [중증환자 치료비 경감 제도]와 같은 것이었다.
당시 아버지께서는 폐암 말기로 6개월간의 투병을 하셨고, 이 제도 덕분에 병원비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남편은 2도 화상의 진단과 함께 20일간의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퇴원할 때 받은 내역서에는 80만원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일부 치료제의 비급여 외에 다른 치료와 병실료, 식대는 산정특례를 적용 받은 덕분이었다. 물론 얼굴의 화상도 흉터없이 치료가 되었다.

의료실비보험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건강보험은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첫 갱신이 되는 5년째에 폭발적으로 인상된 보험료 고지서를 받아 들고서야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건강보험의 혜택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경험담일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다. 우리 지역 자체가 노령화 비율이 높은 곳이다 보니 주변에는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거의가 병원비 부담이 적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의료보호 대상자라서 큰 돈 없이도 건강을 챙기면서 시골생활을 지내는데 만족한다고들 한다. 자식도 못해주는 것을 나라가 해준다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 가난한 사람과 만성·중증질환자에게는 가장 믿음이 가는 곳이 건강보험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의료실비 보험료는 낮추고 건강보험료의 적용을 확대한다는 정책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주 좋은 정책방향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뛰어난 독보적인 정책임을 외국에 나가 살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는 언젠가는 투석이나 이식을 해야 한다는 극심한 공포감이 있었다. 그것은 질환에 대한 공포감도 있었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경제적인 부담에 대한 공포감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실시하는 일련의 제도 혜택을 입으면서 그런 공포감은 이제 없어졌다. 많이 아프게 되어도 믿을 수 있는 건강보험 정책이 있다는 것은 투병에 대한 의지와 마음의 편안함을 주는, 그래서 내 투병에 가장 보탬이 되는 존재인 셈이다. 물론 될 수 있으면 이런 제도적 혜택을 입지 않고 ‘건강보험료는 건강을 위한 부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나는 믿는다.
내 삶에 건강보험이 가장 큰 위안이 될 것임을.

건강보장 40주년 건강보험 체험수기 공모전 최우수작 『믿음을 주는 건강보험, 마음이 편해요』, 박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