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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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다. 서해안의 이 항구도시는 이런 독특한 분위기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시내에는 히로쓰 가옥과 구 조선은행 건물, 옛 철길 등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그대로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 초원사진관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의 아픔과 유산이 몽환처럼 오묘하게 공존하는 곳, 그곳이 군산이다.

아픔을 간직한 근대역사의 도시
군산은 부산, 원산, 인천, 목포에 이어 1899년 5월 1일 다섯 번째로 개항된 항구도시다. 당시 군산은 쌀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일본 상공인들의 경제적 중심지로 일컬어졌지만, 실제로는 호남과 충청 일대의 쌀을 일본으로 강제 반출하기 위한 식민수탈의 중심지였다.

 

과거 군산은 ‘일본인들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본인이 많이 거주했다. 내항을 중심으로 한 시가지는 대부분 일본인들의 주거지였다. 지금도 구도심 지역의 건물 가운데 약 20%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가옥들이다. 군산시 장미동과 월명동, 신흥동 등의 내항 일대는 이처럼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국사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이다. 대웅전 한 켠에는 일제의 무단통치 참상을 고발하는 군사 및 경찰 관련 유물과 문서 등이 전시되고 있다.

살아 숨 쉬는 영화 세트장
전북 군산시 경암동 12통. 이곳은 서울의 여느 동네와 다르지 않게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하지만 눈길을 조금만 돌리면 새로운 공간이 눈에 보인다. 옛 정취를 간직한 철길 같은 것들이다. 철길은 낡은 판잣집들을 양편으로 가르며 흐르고 있다. ‘경암동 철길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군산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명소 중 하나다.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촬영장소로도 손꼽힌다.

1944년 놓인 이 철길의 정식 이름은 ‘페이퍼코리아선’이다. 신문용지 제조업체 ‘페이퍼코리아’사의 생산품을 실어 나르는 용도였다. 총 길이 2.5㎞의 철길 가운데 철길마을 사이를 통과하는 구간은 약 1.1㎞다. 기차는 2008년에 운행이 중단됐다. 철길마을엔 많은 사람들이 머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몇 가구만이 남아 있다. 지난 시절의 흔적 속에서 주민들의 삶이 미미하게나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가운데 하나가 초원사진관이다. 이곳은 배우 한석규, 심은하가 주연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지다. 영화 속 장면들을 회상할 수 있도록 촬영 당시 소품이 고스란히 놓여 있다. 주인공 정원(한석규)이 늘 타고 다니던 오토바이도 사진관 앞에 세워져 있다.

군산 여행의 또 다른 묘미, 먹거리 투어
군산 구도심에는 중화요리 전문점이 많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이곳에 터를 잡은 화교들이 많았던 탓이다. 바다를 곁에 둔 지리적 특성 덕분일까. 해산물을 그득하게 넣은 짬뽕은 이 지역의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복성루, 쌍용반점은 외지 사람들에게 유명한 반면 빈해원은 군산시민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1951년 문을 연 이곳은 인테리어에도 오랜 역사가 묻어 있다.

이성당의 단팥빵은 군산의 명물이다. 이성당은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해방 후 역사만 70년에 이른다. 이곳의 빵을 맛보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하는 수고를 감내해야 한다. 정해진 시간에 빵이 나오면 기다리던 손님들은 쟁반 가득 빵을 올린다. 이 집 단팥빵은 얇은 빵 사이에 달달하고 담백한 팥소가 그득한 것이 특징이다. 짭조름한 양념에 아삭한 채소가 버무려진 야채빵도 인기다.

역사의 현장을 에워싼 천혜의 자연
군산은 바다와 강이 만난다. 그 양 옆으로 너른 들과 나지막한 산도 어우러진다. 금강하굿둑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더 없이 좋다. 이 둑은 군산만(群山灣)으로 흘러드는 금강 하구를 막아 건설했다.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을 잇는다. 총 길이는 1,841m로 1억 3,000만 톤의 담수량을 자랑한다. 금강하굿둑 일대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매년 겨울이면 수많은 철새들이 찾아든다.

금강하굿둑 남단 사거리에서 군산시내 방향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채만식문학관이 나온다. 군산에서 태어난 근대 풍자 문학의 대가, 채만식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은 소설가 채만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오롯이 만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문학관 2층 전시실에서 바라본 금강 하류의 풍광은 군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글_양정연
사진_강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