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명화] 고흐, 그의 일생과 메니에르병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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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방> 1888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나는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

빈센트 반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네덜란드 남부의 브라반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했던 고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전도활동에 전념한다. 하지만 격정적인 성격 탓에 고흐는 교회 전도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실의에 빠진 고흐는 성직 대신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는 생각에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헤이그로 건너간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매춘부 시엔을 만난다. 다섯 살 난 딸이 있고, 고흐와 동거할 당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시엔을 고흐는 진심으로 사랑했다. 고흐는 그녀와 결혼하려 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시엔을 모델로 그린 <슬픔>은 고흐의 초기 작품의 걸작으로 꼽힌다. 축 늘어진 가슴과 볼록한 아랫배가 성적인 매력보다는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왼쪽부터) <슬픔> 1882년, <감자를 먹는 사람들> 1885년 (출처: Wikimedia Commons)

고흐는 브뤼셀·앙베르 등지에서 노동자·농민 등 주로 하층민의 생활과 풍경을 그렸다. 초기 걸작 <감자 먹는 사람들>도 이 무렵에 그려진 작품이다.
어두웠던 고흐의 초기 화풍이 변화한 것은 인상파의 밝은 그림과 일본의 우키요에 판화를 접하고 나서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하고 사망할 때까지 약 2년 반 동안 그는 작품 활동에 열정적으로 매진했다. 이 때 <아를의 도개교>, <해바라기> 같은 걸작들이 탄생했다.

<해바라기> 시리즈 1988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나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싶지는 않아.
색도 내 마음대로 칠하지.
난 단지 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길 원할 뿐이야.”

<밤의 카페 테라스>는 고흐의 이같은 주장이 잘 드러난 걸작이다. 카페의 노란빛이 밤하늘과 보색으로 대비되어 노란색과 남색이 모두 강조되며, 밤하늘의 별은 노란색으로 여러 겹 덧칠해져 별빛이 반짝이는 듯한 효과를 준다.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독특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림 왼쪽에 솟아있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고,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은 굽이굽이 소용돌이친다. 격정적인 고흐의 내면과 닮아있다.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해.
그럴 때면 묻곤 하지.
왜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 가듯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해.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지.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인지도 몰라.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밤하늘의 별빛과 달빛이 굽이치는 <별이 빛나는 밤>을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고흐가 앓았던 질환을 엿볼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고흐가 어지럼증을 겪는 메니에르병 환자였기 때문에 그런 증상에 시달리며 이러한 걸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메니에르병이란? 
현기증과 청력 저하, 이명(귀울림) 등의 증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질병이다. 건강정보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의하면 2016년 메니에르병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13만 3,297명이었다. 2월 1만 7,008명, 3월 1만 8,905명으로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는 시점에 진료인원이 2천 명가량 상승했다.

고흐는 자화상도 많이 그린 화가로, 그의 자화상만 약 40여점에 달한다. 전체적인 화풍이 변화함에 따라 자화상을 그리는 그의 관점과 화풍도 변화했다. 고흐의 자화상이 특별한 이유는 그의 그림이 단순한 인물 표현에 그치지 않고 화가 자신의 내면 상태까지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화상> 1889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사람들은 말하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
자기 자신을 그리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야.

렘브란트가 그린 자화상들은 그가 자연을 관찰한 풍경화보다 더 많아.
그 자화상들은 일종의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야.”

사람들과 원활하게 교류하지 못했던 고흐는 그림을 통해 내면의 세계로 잠식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그림으로 창조해 내고, 자화상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했다. 고흐에게 그림은 곧 살아가는 이유였고, 그의 작품은 이상과 현실의 치열한 갈등 속에서 이뤄낸 값진 결실이었다.

<수염 없는 자화상> 1989 (출처: Wikimedia Commons)

고흐의 마지막 자화상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어머니 생일 선물로 그린 작품이다. 이전과는 구분되는 부드러운 색채로 그려진 그림 속의 고흐는 턱수염을 깔끔하게 밀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맑은 눈빛이 유난히 슬퍼 보인다.

10여 년 동안 900여 점에 달하는 그림과 1700여점이 넘는 스케치를 남겼지만, 그가 살아생전 판매한 그림은 단 한 점이었다. <붉은 밀밭의 까마귀>란 이 작품도 사실 미술상을 하던 동생 테오가 사준 것이었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고흐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37년, 짧은 생을 권총자살로 마감하고 난 뒤 비로소 작품의 진가를 인정받은 고흐는 세계적인 화가로 추앙받으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글_박정연
참고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출판사
「책장 속의 미술관」, 눈과마음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과 작품세계, 빈센트 반 고흐」 예담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