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명화] 캔버스로 옮겨진 음습한 우울, 에드바르트 뭉크

<불안> 1894년 (출처: Wikimedia Commons)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노르웨이 남부의 작은 마을 뢰텐에서 태어났다. 군의관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뭉크의 어린 시절은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다. 그의 유년기는 질병과 죽음이 가까이 있었다.

뭉크가 다섯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잉태한 채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깊은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신앙에 의존했다. 아버지는 점점 광신도로 변모해 갔고, 그 영향을 받아 여동생까지 종교에 과도하게 심취해 정신병을 앓았다. 뭉크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는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해오던 누나 소피아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뭉크 자신도 신경쇠약과 결핵에 시달렸다. 이런 어린 시절의 암울한 경험이 훗날 뭉크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병든 아이> 1886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병든 아이>는 누나 소피아가 결핵에 시달리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어머니를 대신해 병약했던 뭉크를 돌봐주었던 누이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는 뭉크에게 깊은 고통으로 새겨졌다. 그림 속 소녀의 헝클어진 머리와 멍한 눈, 제대로 지탱하지는 못하는 연약한 목이 안쓰럽다. 소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중년 여성은 이모 카렌이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모습에서 좌절과 비통함이 배어나온다.

1889년 뭉크의 아버지 크리스티안이 세상을 떠난다. 잇따른 가족의 사망에 깊은 절망과 우울에 빠진 뭉크는 이후 죽음과 공포, 두려움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남동생 역시 1895년 서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뭉크가 겪었던 우울증은? 
우울증은 정신적, 신체적 기능이 저하되면서 의욕이 줄어들고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년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68만 169명이었다. 2015년 대비 약 13.1%(7만 9,017명) 증가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난간에 기대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그 순간 날카로운 소리가 천지에 진동했다. 나는 그 절규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핏빛으로 물든 하늘과 절규를 캔버스에 그렸다.”

<절규> 1893년 (출처: Wikimedia Commons)

1893년 제작된 <절규>는 뭉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구불거리는 붉은 노을과 검푸른 바다는 세상을 집어삼켜버릴 것만 같다. 그림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난간은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그 중심에서 두 귀를 막고 경악하고 있는 한 인물의 “악!”하고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다.

같은 해 완성한 <흡혈귀>와 1894~1895년에 걸쳐 그린 <마돈나>는 여성을 향한 뭉크의 시선이 드러난다. 1885년 여름, 뭉크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첫사랑의 대상은 매우 자유분방한 기질을 가진 밀리 탈로라는 여성이었다. 바람과도 같은 그녀와 연애를 하면서 뭉크는 끊임없는 의심과 질투에 시달리게 되었고, 모든 여성을 가증스러운 존재로 여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뭉크에게 여성이란 마돈나이면서 흡혈귀의 본성을 지닌 야누스적인 존재였다.

“당신의 입술은 잘 익은 과일처럼 붉다.
당신은 쾌락과 고통으로 입술을 살짝 벌리고 시체처럼 미소 짓는다.
이 순간 생명과 죽음은 손을 잡는다.”

<마돈나> 1894~1895, <흡혈귀> 1893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뭉크가 가진 부정적인 여성관은 이후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1902년 뭉크와 그의 여자 친구 툴라 라르센과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이 가고 있었다. 끈질기게 결혼 요구를 하는 라르센과 달리 뭉크는 그녀와 결혼할 뜻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격렬한 다툼 끝에 총알이 뭉크의 왼쪽 손가락을 관통하게 되고, 뭉크는 한 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이 일로 뭉크의 여성에 대한 혐오는 더욱 심해지게 된다.

<마라의 죽음> 1907년, <뼈가 있는 자화상> 1895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마라의 죽음>을 살펴보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침대 위에 누워있다. 그 옆에는 한 여자가 서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성교 후에 극심한 피로감 때문에 죽은 것이다. 피가 흥건한 배경에서 느껴지는 공포보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여성이 더 소름끼친다.

이후 뭉크는 불안증세가 더욱 심해져 병원에 입원해 요양 치료를 받는다. 이후 건강이 회복되면서 색채가 밝아지고 작품 양식이 변화했다. 뭉크는 1909년 오슬로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전이 성공하면서 고국에서도 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뭉크는 1916년 오슬로 근처에 토지를 매입, 그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뭉크는 1933년 70세 생일에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성 올라브 대십자 훈장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말년에 시력을 거의 다 잃은 뭉크는 1944년 1월 23일 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

 

[질병과 명화] 고흐, 그의 일생과 메니에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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