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인을 만나다] 본업은 의사, 취미는 엑스레이 아티스트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살고 싶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이자 엑스레이 아티스트다. 2011년 EBS 메디컬 다큐멘터리 ‘명의’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상의학과 의사로 선정된 정태섭 교수. 그는 흑백의 엑스레이 사진에서 물체 내부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어 의학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Q1. 정태섭 교수님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의사 겸 엑스레이 아티스트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 요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 살아왔다기보다는 이것저것 관심의 폭을 넓혀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딴 짓을 했다고 할까요(웃음). 의사로서 나쁜 일만 아니라면 최선을 다해보자 싶었어요. 영상의학도이다 보니 매일 같이 보는 엑스레이에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아트를 하게 됐습니다. 과학을 좋아하다 보니 인연이 닿아 MBC 어린이 과학 방송에서 MC를 맡기도 했고요. 그런 식으로 의사라는 직업의 폭을 넓혀왔습니다. 병원을 찾은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에 건강한 문화를 함께 이끌어가는 사람이 의사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 입장으로는 좀 더 건강한 삶을 가꾸어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렇게 폭을 넓혀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Q2. 영상의학도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밤새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문득 답답한 생각이 들어 구석에 있던 천체망원경을 꺼내 들고 병원 앞에 있는 정원으로 향했어요. 천체 망원경을 본 소아과 아이들이 쫓아내려와 함께 별을 관측했습니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에게 “이 별이 너의 희망이다”라고 말해주었어요. 머리를 크게 다쳐 입원했던 한 아이는 더듬더듬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서 무언가 자극이 필요하다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별보기 행사가 13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아이들과 과학으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의사라고 소문이 나서 MBC 어린이 과학방송에서 MC 요청도 들어왔고요. 자연스럽게 의사의 삶이 사회문화적인 부분으로 넓혀져 많은 교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의학이 일반인들과의 충분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꽃의 빅뱅>, <입 속의 검은 잎>

Q3. 엑스레이 아티스트로서의 이야기도 해주세요. 개인전 18번, 단체전 등 총 100회가 넘는 전시회를 여셨어요.

2006년 10월 늦은 밤이었어요. TV문학관에서 기영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입 속의 검은 잎, 제목을 되뇌다가 문득 이것을 엑스레이 사진으로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엑스레이는 흑백이기에 검은 잎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입에 쇠로 된 브로치를 물고 찍었더니 ‘입 속의 검은 잎’이 나왔습니다. 작품을 인터넷에 올렸더니 호응이 좋았어요. 인터뷰 요청도 많이 받았고요. 이듬해 첫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전시를 여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어요. 53세의 초짜 아티스트에게 기회를 주는 갤러리를 만나기까지 총 13곳을 찾아다녔거든요. 우여곡절 끝에 첫 전시를 열었는데 누군가 제 작품을 구입해주었습니다. 그 보답을 하기 위해 열심히 하다 보니 점점 일이 커져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만류도 많이 했지만 ‘아, 이게 기회인가 보다’ 싶어 적극적으로 시도했습니다. 제가 엑스레이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약속>, <너무 맛있어>

Q4. 엑스레이 아트를 보며 교수님께서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어떤 물체를 볼 때 우리는 가시광선을 통해 표면만 봅니다. 그러나 엑스레이는 이면인 내부를 보죠. 표면이 예쁜 물체를 엑스레이로 찍어보면 내부에 새로운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그런 아름다움이죠. 컴퓨터를 이용해 색을 넣으니 훨씬 감성적이고 아름다워졌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나누기 위해 병원 곳곳에 전시를 해두었어요. 환자 분들이 엑스레이 사진이 작품이 되었다고 신기해해요. 아파서 찾아온 병원이지만, 병원이 문화의 한 장르가 되어 환자 분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채 피지도 못하고 벌써 지는데.>

Q5. 엑스레이 아트 외에도 취미가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국민학교 5학년 때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66년도 말이었죠. 사투리를 쓰다 보니 내성적이게 되고 친구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교장선생님이던 아버지가 계신 학교로 자주 놀러갔어요. 청계천을 지나는 길에는 라디오 부품, 전축 부품, 고서점 등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 많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고서점 책방에서 유자후 선생님의 「조선 화폐고」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에 있는 화폐를 전부 모아 책을 내신 분이었죠. 그걸 보고 감명을 받아 화폐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화폐를 전문적으로 모으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화폐를 모으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렴하게 살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중학생이었던 제게는 부담이었기 때문에 전축을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돈을 벌어 화폐를 사고, 또 돈을 벌어 화폐를 샀어요. 고서점상에 자주 들르다보니 오래된 편지 등 옛 물건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라디오를 만들면 가장 먼저 BBC를 들었습니다. 음악이 많이 나왔거든요. 천체 망원경도 직접 깎아 만들어 천체를 관측하기도 했고요.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제 인생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교수가 되고 외국에 처음 나가 미화 100달러짜리 지폐를 보았습니다. 정치가이자 과학자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져 있었죠. ‘미국이 이렇게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과학자가 화폐에 나올 정도로 우대를 해주기 때문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과학자 초상이 그려진 화폐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5만원 권에 과학자 장영실 올리기 운동도 했던 것이고요.

 <오늘을 즐겨봐>, <바이올린 위의 선율>, <좋은 날이야>

Q6. 내년 8월까지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에서 ‘정태섭 교수 기증 유물 특별전’이 진행됩니다. 수집하신 엑스레이와 현미경을 전부 기증하셨어요.

세계를 돌아다니며 화폐를 모을 때 엑스레이와 현미경도 함께 수집했어요. 기증한 유물은 1790년대 현미경부터 요즘에 사용되는 대용량 X-선 관의 초기 형태인 ‘쿨리지 X-선 관’, 현미경, 부속 유물 등 17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사용됐던 다양한 유물 등 총 140여 점입니다.

제가 이렇게 의사와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세브란스 병원에 왔기 때문입니다. 제게 기회를 준 고마운 곳이죠. 열심히 모은 엑스레이와 현미경을 가장 의미 있고 알맞은 장소에 두는 것이 후대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모교에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방사선과 전공학생은 물론 미래의 과학자, 의료인을 꿈꾸는 모든 학생들이 관람하고 많은 동기 부여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Q7. 저서 『하루를 살아도 후회 없이 살고 싶다』를 집필하셨어요. 책을 내게 된 계기와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누구나 나름의 후회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후회할 일보다 좋은 일이 더 크게 생긴다면 후회할 일이 경감되겠지요. 오늘 100원 손해 봤는데, 내일 1,000원을 번다면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 그렇게 내일의 미래가 오늘의 후회보다 더 클 수 있도록 발전적인 미래를 설계하자는 의미에요. 제 동년배들은 퇴직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우리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야 합니다. 어제의 후회에서 벗어나 퇴직 후 인생 이모작을 멋있게 설계해보자는 의미로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살아간다면 일상이 풍요로워지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안되면 어떡하지 그것부터 걱정하니까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도전하고 안 될 때 생각해도 충분합니다. 걱정할 시간을 아껴서 도전하세요.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지속하세요. 처음부터 1번의 시도만으로 잘 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희대의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도 희곡을 150여개 정도 썼습니다. 그 중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0편이 채 안되지요. 천재 화가 피카소도 2만 여점의 그림을 그렸는데 우리에게 인기 있는 그림은 100점이 채 안됩니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200편이 넘는 논문을 작성했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논문은 5개 정도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나머지는 전부 실패인 것이죠. 하지만 실패를 계속 하다보니까 무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럼 실패를 무서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Q. 마지막으로 건강나래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작은 일이라도 박수 받을 만한 일을 하루에 한 두 개씩 만들어보세요. 다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도와주어도 좋고요. 어렵사리 리어카를 끌고 가는 분을 도와도 좋습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 일을 되새기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잠드세요. 잘 때 괴로움으로 뒤척이지 말고, 박수 받았던 일을 되새기는 거에요. 행복한 꿈을 꾸고, 다음날 아침 컨디션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건강입니다. 주기적으로 국가에서 하는 검진이라도 꼭 받아 내 몸을 살피고,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건강한 미래를 계획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건강나래 독자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

 <장미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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