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명화]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의 기록① 오귀스트 르누아르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 1880~1881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1919)는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 리모주에서 태어났다. 양복점을 운영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르누아르는 13세에 도자기 공방에 취직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면서 소묘와 색채를 익힌 그는 점차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이후 도자기에 그림을 찍어내는 인쇄 기술이 발명되면서 손으로 접시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다.

1862년, 청년 르누아르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글레르 아틀리에에 들어가 정식으로 회화 공부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그는 모네, 바지유, 시슬레를 만나게 되는데, 이후 이들은 인상파의 핵심 멤버가 된다.

*인상파: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상주의 미술을 추진한 유파. 자연을 하나의 색채로 보고,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고자 했다.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변모하는 풍경을 찰나의 순간으로 포착해 그림으로 그렸다.

초창기 르누아르는 주로 흰색과 검은색을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이는 마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존의 인상파 화가들과는 반대되는 색조 방식이었다. <특별 관람석>과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 르누아르의 초창기 화풍을 엿볼 수 있다.

<특별관람석> 1874년, <물랭 드 라 갈레트> 1876년 (출처: Wikimedia Commons)

<특별관람석>에서 꽃으로 화사하게 치장한 그림 속 여인은 직업 모델인 니니이다. 빛나는 눈과 붉은 입술, 풍만한 가슴과 우아한 옷차림이 시선을 잡아끈다. 그 뒤에 망원경을 든 신사는 르누아르의 형제인 에드몽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르누아르가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몽마르트 언덕의 무도회장을 그린 그림이다. 그는 이곳을 수시로 드나들며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을 남겼다. 나무 사이로 밝은 햇살이 비추는 무도회장은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 듯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인상파 성숙기에 접어들며 르누아르의 그림 색채는 한결 화사해진다. 1878년 그린 <잔느 사마리의 초상>이 그렇다. 그림 속의 여인은 동명의 프랑스 여배우다. 르누아르의 그림에 1877~1878년 동안 총 4차례 등장한다. <잔느 사마리의 초상>을 보면 배경과 인물의 경계가 모호해 그림이 한층 부드러워 보인다. 화사한 색채로 표현된 잔느의 선한 눈매와 홍조 띤 양 볼이 사랑스럽다.

<잔느 사마리의 초상> 1877년, <햇빛 속의 누드> 1876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나는 물 위에 던져진 코르크 조각처럼 물살에 떠밀려 다녔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내 그림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

한편 르누아르는 1874년 화가전에 출품한 <햇빛 속의 누드>로 평론가들로부터 호된 비평을 듣게 된다. 이 그림은 숲 속에 있는 여인에게 비춘 빛과 그림자를 표현했다. 평론가들은 여인의 나체에 드리운 검푸른 그림자를 지적하며 냉소를 보냈다. 이러한 표현은 당시의 심미관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비평에 상처받은 르누아르는 이후 다소 후퇴한 인상파 회화 기법을 보인다.

<줄리 마네> 1887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르누아르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접한 라파엘로의 작품과 앵그르의 신고전주의적 작품의 영향을 받아 화풍이 변한다. 인상주의적 기법이 줄어든 앵그르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일명 고양이를 안고 있는 아이라 불리는 <줄리 마네>는 르누아르의 앵그르 시대를 대표하는 그림이다. 통통한 장밋빛 뺨을 지닌 소녀의 평온한 표정과 만족한 듯한 고양이가 볼수록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알린 샤리고의 초상> 1885년, <젖을 먹는 아이> 1885년 (출처: Wikimedia Commons)

1885년 르누아르는 알린 샤리고와의 사이에서 첫아들 피에르를 얻는다. 그 후로 몇 달 간 그는 알린이 아들에게 젖을 주는 모습을 작품으로 남긴다. <젖을 먹는 아이>는 르누아르를 응시하는 알린의 나른한 눈빛, 엄마 젖을 물고 발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아가의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1890년 르누아르는 알린과 결혼한다. 늦은 나이에 꾸린 가정은 르누아르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가정은 화목했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 또한 깊었다. 이 시기부터 르누아르의 그림에 아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가족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놀고 있는 클로드 르누아르>, <바느질하는 장 르누아르> 19세기 경 (출처: Wikimedia Commons)

1903년 무렵부터 르누아르는 류마티스 관절염 증세가 깊어지게 된다. 손은 심하게 뒤틀렸고, 손가락은 새의 발톱처럼 휘었다. 그는 붓을 입에 물거나 팔에 붓을 묶는 방식으로 그림을 계속 그렸다. 그는 하루도 붓을 놓지 않았다. 비록 몸은 성치 않을 지라도, 그림을 그리는 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고 한다. 화가의 행복한 마음이 캔버스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일까, 르누아르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미소가 피어오른다.

르누아르가 앓은 류마티스 관절염은? 
류마티스 관절염은 관절을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인 활막에 염증이 발생한 것. 염증이 주변의 연골과 뼈로 퍼져나가 관절의 파괴와 변형을 초래하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6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25만 2,300명으로, 40~70대가 전체 진료인원의 88%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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