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부산, 언제 가도 좋은 그 곳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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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보면 제2의 고향같이 느껴지는 장소가 있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흘러가던 어느 날인가 떠났던 부산이 그랬다. 부산의 풍경, 시원한 바닷바람, 어둠이 깔리면 드러나는 도심의 화려한 야경, 부산 사람들의 투박한 듯 정이 넘치는 사투리와 특유의 활력 등 모든 것이 좋았다. 그곳에서 만난 풍경 하나하나가 오롯이 마음에 담겼다.

화려한 도심 뒤에 감춰진 아픔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해안을 따라 발달한 해수욕장, 온천, 사찰 등 풍부한 관광자원으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부산은 화려한 이면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은 일본과 가까운 항구도시라는 지리적 특성상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기 전에 찾아온 한국전쟁은 또 다른 아픔을 가져왔다. 1950년 임시수도로 지정된 부산은 피난민들이 머무를 수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흰여울문화마을
5월에는 부산으로 향하며, 부산 관광공사에서 진행하는 ‘원도심 스토리 투어’를 신청했다. 부산 토박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곳곳을 돌아다니며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다. 강정분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따라 흰여울문화마을을 둘러보았다. 흰여울문화마을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피난민 집성촌이다.

△2011년 겨울, 폐가를 리모델링하면서 흰여울문화마을은 독창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역 예술가들의 예술혼이 담겨 이곳에서는 빨랫대도 액자가 된다.

흰여울문화마을은 긴 세월동안 조금씩 깎여 만들어진 영도의 가파른 절벽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있는 마을이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되었다.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고 가파르다. 골목이 좁은 만큼 집 내부도 좁기 때문에 세탁기, 보일러 등 부피가 큰 생활가전들은 집밖에 두고 산다. 삶이 팍팍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지만 이내 오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을 곳곳에 심겨진 꽃나무, 벽을 수놓는 색색의 벽화 등에서 주민들의 여유와 마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마을길을 따라 걷는 동안 마을 주민들이 간직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나가는 여행객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누렁이는 흰여울문화마을에 소문난 순정남이다. 어느 날 누렁이의 집에 임신한 암캐가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았다. 암캐는 새끼를 낳고, 동네 다른 수캐와 바람이 나서 홀연히 떠났다. 누렁이는 버려진 새끼를 키우며 암캐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그런 슬픈 이야기.

흰여울문화마을의 명칭은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소도록하게 내리는 흰눈과 같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여울은 얕은 강이나 바다 혹은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말한다. 흰여울은 물이 맑고 깨끗한 여울이라는 뜻이다. 순우리말이 주는 어감이 예쁘다.

강정분 할머니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겪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엄니, 아부지가 방아 찧으러 가면서 세 살 먹은 나를 눕혀 놓고 갔어. 집 근처에 철길이 있었는데, 철길을 폭격하니까 그 충격으로 내가 멀리 날아가서 도랑에 빠진 거야. 그 도랑은 인위적으로 파서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둔 곳이었어. 전쟁이 나면 그리로 피난을 갔거든. 도랑 안에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기가 날아온 거야. 거기 있던 한 할매가 “아가, 이리온” 하니까 아장아장 걸어오더래. 그 할매는 나만 보면 “저 놈의 가시나, 내가 건져서 살려줬다”고 했어.”

개구쟁이 소녀같이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하던 할머니는 이내 표정을 바꿔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시는 정말 살기 어려웠어. 지금은 먹고 살기 좋잖아, 그때는 정말 없어서 못 먹었거든. 깡통 차고 동냥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어. 동냥 오면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엄마는 거지들한테 밥을 한 대접 퍼주었어. 그럴 때면 나는 막 눈물이 났어. 우리 어릴 적에는 참 못 먹고, 못 입고 살았지.” 회상에 젖은 할머니의 눈이 그윽해졌다.

남포동 시장의 역사
흰여울문화마을 원도심 투어를 마치고 남포동으로 향했다. 부산 남포동에는 자갈치시장과 국제시장, 깡통시장이 있다. 시장의 어원을 살펴보면 부산을 조금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

자갈치시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펄떡이는 생선과 싱싱한 해산물이 가득한 수산물 시장이다. 1889년 일본인들이 자국 어민을 보호하기 위해 부산수산주식회사를 세우면서 상인들이 이곳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부산수산주식회사는 국내 최대 어시장인 부산 공동어시장으로 발전하였고, 그 주변으로 영세상인들이 모여 들어 자갈치 시장을 이루게 되었다.

   

국제시장은 1945년 광복 후 철수하던 일본인들이 물자를 팔아 귀국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시장이다. 1950년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이 장사를 하며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일명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는 이곳을 통해 미군 군수 물자와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온갖 상품들이 전국으로 공급되었다.

깡통시장은 자갈치시장, 국제시장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깡통시장의 시초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항이 개항하고 부산 부평동에 일본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일한시장이 생겨났다. 이후 1920년대 규모를 넓혀 발전한 것이 현재의 깡통시장이다. 미군용 물품인 통조림 등을 많이 팔았기 때문에 깡통시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보수동 책방골목
씨앗호떡을 먹으면서 보수동 책방 골목으로 들어섰다. 막 빠져나온 번잡한 시장과 달리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한국전쟁 당시 함경북도에서 피난 온 부부가 헌 잡지와 책 등을 팔면서 형성된 곳이다.

보수동의 한 책방, 흰 목장갑을 끼고 묵묵하게 책을 정리하고 있는 아저씨가 눈에 띄었다. 보수동 책방골목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풍경이었다. 다가가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넸다. 그 아저씨의 성함은 김종훈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던 아저씨는 보수동 책방골목의 단골이었다. 1978년 그날도 책을 사러왔다. 주인아주머니가 책방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인수했다. 1칸으로 시작한 대우서점은 점차 확장했고, 호황기를 맞이했던 때도 있었다. 어언 40년의 세월이 흘러 상황은 달라졌다. “종이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지난 추억을, 과거의 향수를 아련하게 불러일으키지요. 점차 사라져가는 종이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제는 참 어렵습니다. 모두 힘들어 해요. 이곳에 오시면 구경하고 사진만 찍지 말고, 책도 한 권 사가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아저씨의 웃음이 호탕한 듯 아렸다. 여행객에게 관광 코스인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인 것이다.

아저씨는 책방 단골손님들과 매달 1회 독서회를 개최한다. 단골들은 10년, 20년 째 이곳을 찾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40년 된 단골도 있다. 전문서적을 뒤적이던 대학생 손님이 이제 예순을 훌쩍 넘겼다.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해 어느 순간엔 아내를 데려오고, 이후에는 아이 손을 잡고 왔다.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2대째 단골이 되었다. 단순한 주객관계를 떠나 아저씨는 손님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인생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부산여행도 식후경
여행 이튿날엔 세찬 비가 내렸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부산이 연고지인 지인에게 추천받은 맛집으로 향했다.

자갈치 시장에는 유명한 횟집이 많다. 찾아간 곳은 이름도 부산명물횟집이다. 7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곳은 수요미식회에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1인용 회 한 접시가 나오는 회백만이 인기인 곳으로, 바닷가에서 바로 잡은 신선한 회를 맛볼 수 있다. 감칠맛이 도는 고추장은 별미다. 바닷바람에 떨다 온 참이라 뜨끈한 지리탕을 국물 한 숟가락 남김없이 다 먹었다.

  

돼지국밥은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자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고아 먹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현재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손꼽히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랑받고 있다. 서면역 근처에 위치한 송정3대국밥집에 도착해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뽀얀 국물에 고기 수육이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양념장을 풀고 부추를 넣었다. 한입 먹고 두입 먹다보니 어느새 바닥이 보였다. 도대체 이런 손맛은 어떻게 내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이번엔 밀면이었다. 밀면도 한국전쟁 당시 만들어진 부산 향토음식이다. 이북 피난민들이 메밀대신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 냉면처럼 먹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 밀면이 부산의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중심에는 가야밀면이 있었다. 삼성밀면은 가야밀면의 공동창업주인 김무순 할머니가 운영하는 곳이다. 김무순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오빠와 함께 가야밀면을 열어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할머니의 나이는 꽃다운 열일곱, 현재 71세니 밀면과 함께 한 세월이 50년이 넘는다. 할머니는 자다가 일어나서 만들 수 있는 것이 밀면이라며 배시시 웃는다.

“밀면은 순 밀가루에요. 손으로 많이 치대야 면이 부드러워져요. 양념장에는 양파를 많이 넣어요. 손님들이 양파가 이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몰랐다며 놀래요.” 차가운 밀면의 음식 특성상 겨울에는 손님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이 있어 겨울에도 문은 열어둔다고. 한가한 겨울에는 다음해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한다. 간장을 담그는 것처럼, 사골과 약재를 아낌없이 넣고 푹푹 끓여 저장해둔다. 밀면 한 그릇이 나오기 위해 밀가루 반죽부터 양념장, 사골 육수를 고는 길고 긴 과정을 거친 음식이 단돈 5,000원이다.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욕심 없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곧 무더운 여름이 오면, 71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찼던 김무순 할머니와 함께 시원새콤한 밀면 한 그릇이 생각날 것 같다.

 

[여행가의 노트] 봄, 경주, 역사유적지구 >> http://hirawebzine.or.kr/13493
[여행가의 노트]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 http://hirawebzine.or.kr/12912

글, 사진_박정연
참고
네이버 플레이스(부산자갈치시장, 국제시장)
국내시장백과(부산 부평깡통시장)
한국민족문화대백과(부산광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