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묻지마’ 가상화폐 투자의 폐해

올해 초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비트코인 광풍을 기억하는가? 언론에서는 연일 비트코인을 비롯한 여러 가상화폐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했다. 주변 누군가가 투자에 성공해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여기에 현혹된 많은 젊은이들은 빚을 내어 가상화폐에 투자하기도 했다. 자신이 투자한 가상화폐의 가격 그래프가 끝없이 상승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우세했다. 하지만 산이 높아지면 그만큼 골짜기도 깊어지는 법, 몇 달 지나지 않아 상황이 바뀌었다. 정부의 투자 규제가 발표되고, 투자심리는 썰물이 빠져나가듯 빠지기 시작했다. 가상화폐의 가격과 미래에 대한 왜곡된 기대 심리 또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지금은 가상화폐 열기가 거짓말처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가상화폐 현상의 문제점 중 하나는 ‘묻지마 투자’가 횡행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큰돈을 벌어들이는 모습을 보거나, 자신의 월급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부를 축적했다는 뜬소문은 박탈감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원칙 없는 투자는 삶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법. 가상화폐의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좌절감과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몇몇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21세기의 가상화폐 광풍은 17세기 네덜란드를 휩쓸었던 튤립 투기와 닮아있다. 당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고, 투자자들은 좌절과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안타까운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상화폐의 열기가 크게 꺾이고 난 후,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비트코인 광풍이 남긴 ‘중독된 뇌’
가상화폐는 상승과 하락의 폭에 제한이 없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 시세가 출렁인다. 갑작스러운 가격의 상승은 투자자에게 짜릿한 쾌락을 안겨준다. 그런 쾌락을 맛본 뇌는 더 큰 자극을 바라게 되고, ‘무엇인가 큰 것을 얻을 것 같은’ 느낌에 과잉 각성된다. 24시간 돌아가는 가상화폐 시장의 특성상, 가격 변동이 심한 시기에 투자자들은 보초 서듯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수면의 박탈, 짜릿한 쾌감의 여운 등으로 일상생활에 감정 기복이 커지면서 자연히 업무나 생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서서히 ‘가상화폐 중독’에 빠져드는 것이다. 중독에 빠진 뇌는 중독 대상에 대한 갈망과 집착을 만들어 내며, 끊어지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인간의 뇌에는 쾌락에 반응하는 보상회로가 존재한다. 중독 대상은 대개 우리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이는 강력한 자극(강화물, reinforce)으로 작용한다. 뇌에서는 자극에 대한 일종의 조건화가 이루어진다. 도파민을 비롯한 신경전달물질체계에 혼란이 생긴다. 뇌는 끊임없는 자극을 추구하지만 충족되지 않으면 극심한 불안과 초조가 나타난다. 중독된 뇌는 갈망(craving)을 낳고, 갈망은 정신적 결핍감과 허무감을 낳는다. 중독회로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문제는 한번 형성된 중독회로는 쉽게 멈추거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상화폐가 호황일 때는 갈망이 충분히 충족된다. 하지만 시세가 자주 변동하거나 가격이 갑작스럽게 하락하는 경우 갈망이 좌절된다. 이로 인해 더 큰 불안과 우울, 절망, 충동과 같은 각종 심리적 문제들이 나타난다. 이런 증상을 설명하는 ‘비트코인 블루’라는 용어가 생겨났을 정도다.

물론 단순히 가상화폐에 몰두하는 사회적 현상을 전부 중독이라 할 수는 없다. 도박중독과 같은 행위중독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지속적인 중독 행위, 이에 따른 삶의 여러 영역에서 손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비이성적인 열기는 단기간에 사회 전반에 큰 상처를 남겼다. 이미 뿌려진 중독의 씨앗이 언제 싹을 틔울지 알 수 없다. 제2차, 제3차 가상화폐 열풍이 올 수 있으며, 그에 따른 파장도 적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가상화폐 열풍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행위중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게임중독, 일중독, 운동중독, SNS 중독 등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중독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과거에는 약물이나 니코틴, 알코올처럼 직접적으로 뇌와 신체에 작용하는 물질에 한해 중독과 의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도박이나 일, 쇼핑과 같은 일상행위 자체에서 발생하는 중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의학계에서도 2013년 개정한 정신의학 진단분류체계 DSM-5에서 그동안 충동조절의 문제로만 인식했던 도박장애를 중독의 일종으로 인정했다. 도박에서 승리했을 때 느끼는 짜릿한 쾌감, 강화물을 끊임없이 갈망한다는 점에서 가상화폐 광풍 역시 행위중독의 면모를 보인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행위중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행위중독을 대처하는 핵심은 자신이 중독 상황에 빠져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중독 행위를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 충동조절의 문제로 치부한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도 밝혔듯이 중독은 뇌의 구조와 신경전달체계를 서서히 변화시킨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이행된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을 때는 이미 중독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삶의 초점이 점차 중독 대상에 맞춰지고, 이로 인해 삶 전반에 걸쳐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지체 없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한다.

자신이 중독에 빠지게 된 원인에 대한 탐색도 필요하다. 중독 행동의 기저에는 현재 안고 있는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가 숨어있다. 술, 도박, 게임, 일 등 형태는 다르지만 그 핵을 들여다보면 동일한 역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독을 본격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중독 행동 자체보다는 원인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고장 난 기계에서 나온 불량품은 기계를 제대로 고치지 않는 이상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 요인들뿐만 아닌, 외부 요인을 받아들이는 자신에 대한 진지한 통찰이 중요하다. 통찰이 생기면 앞으로 나아갈 힘도 생겨난다.

자신이 중독 상황임을 인정하고, 변화하기를 원한다면 장기전을 펼쳐야 한다. 중독 행동을 건강한 행동으로 조금씩 대체해나가는 것이다. 중독 극복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독 대상을 건강한 대상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이 운동이다. 가벼운 산책부터 시작해 테니스, 골프, 수영 등 평소 관심을 가졌던 스포츠에 몰입하는 것이 좋다. 자신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들과의 주기적인 모임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명상이나 요가같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활동을 통해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중독 과정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내려는 생각은 독(毒)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족, 친구들과 함께 내딛는 ‘첫발’이 치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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