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낭만의 여수 밤바다

2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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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미세먼지가 자욱한 날이었다. 여수로 향하는 기차 차창 밖으로 뿌연 하늘이 보였다. 3시간 만에 도착한 여수, 걱정과는 달리 하늘이 푸르렀다. 역을 나서자 코로 들어오는 공기가 청정했다. 마스크는 가방에 넣어두고, 여수에서 만나게 될 풍경을 기대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청정지역 여수
여수는(麗水)는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아름다운 물줄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을 통일하고 전국을 순행하던 왕건이 이곳에 들러 신하에게 물었다. “이 지역은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신하가 대답했다. “물이 좋기 때문에, 인심이 좋고 여인들이 아름답습니다.” 그리하여 고울 여(麗), 물 수(水) 자를 사용해 여수라 불리게 되었다. 여수는 이탈리아 나폴리 항에 비견될 만큼 멋진 풍광을 자랑한다. 산맥과 구릉이 많아 경사가 급하고 평지가 적다. 바다와 인접한 항만도시에는 낮에도, 밤에도 멋과 낭만이 가득하다.

금강산도 식후경
여수에 도착하니 배가 고파왔다. 관광객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여수 오성회관으로 향했다. 이곳의 대표메뉴는 ‘전복해물불고기’다. 음식을 주문하자 냄비에 전복과 새우, 미더덕, 버섯과 야채가 담겨 나왔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물을 한입 떠먹어 보았다. 야채와 해물의 풍미가 육수에 잘 배어있었다. 팽이버섯의 탱글함과 전복의 쫄깃함이 어우러져 맛과 식감을 즐길 수 있었다.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옆방에는 방송인 크리스 존슨과 모델 다니엘 윤이 식사하고 있었다. 여수 MBC 방송 차 들렀다고 한다. 방송을 마치고 짤막하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여수 와보니까 먹을 것이 많아서 정말 좋아요.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있어서 해산물이 무척 신선해요.” 크리스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오늘 시장에 갔는데 할머니가 과일을 팔고 있었어요. 옆에 있던 꼬마 아이가 여수에서 맛있는 것들, 갓김치라든가 보리밥을 추천해줬어요. 그래서 되게 반갑고 고마웠어요.” 한국말이 서툰 다니엘은 옆에서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다니엘에게 여수 갓김치 맛이 어떠냐고 묻자 “갓김치 너무 매워요. 하지만 애호박 등 반찬이 다 맛있어요. 영양밥이 제일 맛있어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크리스가 능숙한 한국말로 이어 대답했다. “갓김치 맵지만 정말 맛있어요. 맛이 톡톡 쏘고, 식감이 진짜 아삭아삭해요. 서울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이것이 바로 여수 갓김치!” 해맑게 웃는 크리스와 다니엘을 사진으로 남기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여수를 이야기하며 유쾌한 시간이었다.

드디어 만난 여수밤바다
음식점에서 나와 종포 해양공원을 향해 걸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배가 불렀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종포 해양공원은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이 2001년부터 약 5년에 걸쳐 완공한 공원으로, 여수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년 5월 이곳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을 기리는 ‘여수 거북선 축제’가 열린다. 여수 밤바다 낭만 버스킹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10월 21일까지 매주 금, 토, 일 저녁(19~22시)에 다채로운 버스킹 공연이 펼쳐진다. 8월에는 여수 국제 버스킹 페스티벌이 예정되어 있다.

종포 해양공원을 걷던 중 홍제원 마술사를 만났다. 사람들에게 마술로 즐거움을 선사하는 그는 자신을 A형이라고 소개했다. “제가 혈액형이 A형이에요. 사람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소심했는데 마술을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어요. 마술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에요. 즐기다 보면 어느새 모두 하나가 되지요. 마술은 그렇게 친화력이 있어요. 마술을 하면서 성격도 바뀌었지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에요.” 거리에서 처음 만난 이에게 선뜻 다가가 익살맞은 장난을 하는 그에게서 더 이상 소심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가는 관객들과 현장에서 즉각적인 소통을 즐기는 그의 모습에서 행복을 읽을 수 있었다.

밤공기가 시원했다.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흥얼거리며 걷던 중 또 다른 버스킹 무대를 발견했다. 빈센트앤로즈라는 밴드였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가사가 반복되었다. 어쩐지 노래가 익숙한 것 같더라니 tvN 윤식당에 소개된 곡이라고 한다. 노래가 끝나자 관객석의 한 아저씨가 “이봐, 라면 먹고 갈래? 나 저기서 식당해~”라고 외쳤다. 모두가 한바탕 웃고 다음 곡이 시작되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의 설렘을 담은 곡이었다. 끼와 재능이 넘치는 보컬의 목소리에 맞춰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의 연주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렸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가수도 관객도 모두 공연의 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젊음 그 자체였다. 여수 밤바다의 젊음이 특별했던 것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의 젊음’이었다는 것이다. 꼬마 아이부터 20~30대, 중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그 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여수에서의 밤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전라좌수영과 진남관
여행 이튿날에는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여수 진남관으로 향했다. 여수는 과거 외세로부터 남해 바다를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임진왜란 당시 위태로운 나라를 지켜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 여수로 부임했다. 그는 전라좌수영에서 수병을 훈련하고 전략을 세우며 외세의 침입에 대비했다. ‘전라좌수영’은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수군을 강화하기 위해 1479년 신설한 군영이다.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진해루가 정유재란으로 불타 소실된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남쪽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케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곳은 임금을 향해 절을 올리며 예를 갖추는 곳이었던 동시에 왕의 명령을 받들고 온 대신과 외국에서 온 사신을 대접하는 곳이기도 했다.

△ 진남관은 현재 공사 중이다. 2020년이면 새롭게 복원된 진남관을 만날 수 있다. 오른쪽은 전라좌수영을 축소 제작한 모형이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건물이 진남관이다.

조선시대 외세로부터 나라를 수호하는 중심지 역할을 했던 전라좌수영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고 방치되었다. 과거 건물 80여 동과 민가 2천여 호, 우물 9곳 등이 있었던 전라좌수영은 1916년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현재 성곽 일부와 진남관만이 남아 있다. 진남관은 국내 기와 단층 건물로는 최대 규모로, 그 역사적 의의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국보 제304호로 지정되었다.

향일암
다음 행선지는 향일암이었다. 향일암은 금오산의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남해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사찰로 ‘해를 맞이하는 암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기암절벽과 남해의 일출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낸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이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은 쉽지 않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바위틈을 통과해 언덕을 가쁘게 오르고 또 올라야 한다. 하지만 이정도 어려움은 이겨낼 가치가 충분하다. 곧 눈앞에 펼쳐질 남해바다의 망망대해에 감격하게 될 테니 말이다.

향일암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여수군지』, 『여산지』의 내용에 비추어 보아 659년 원효대사가 원통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인묵대사가 지금의 자리에 재건해 향일암이라 이름지었다. 현재의 향일암은 1986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이다.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 40호로 지정되어있다.

향일암에서 내려오니 배가 출출했다.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가 있어 언덕을 오르며 보아둔 금오회관으로 들어섰다. 갈치조림과 간장게장, 해물된장국이 나오는 백반정식을 주문했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졌다. 해물 된장국에는 꽃게와 딱새우, 미더덕 등의 해산물이 담겨 신선한 바다향이 났다. 매콤한 갈치조림을 먹고 간장게장 게딱지에 밥을 비볐다. 짭쪼롬한 간장게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맛있게 먹고 나니 뱃속이 든든했다.

여수하면 갓김치
향일암 입구에는 갓김치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갓김치는 여수 돌산 지역의 향토 음식이다. 남도의 해양성 기후와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난 갓을 바다와 육지의 재료로 아낌없이 버무리면 여수표 돌산 갓김치가 탄생한다.

“아가씨~ 갓김치 하나 먹어봐. 맛이 끝내줘~”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주머니가 손짓하고 있었다. 시식대에는 갓김치가 야무지게 돌돌 말려있었다. 맛을 보았다. 신선한 갓의 향이 느껴졌고, 곧 짭조름한 젓갈향이 입안에 퍼졌다. 갓이 아삭아삭했고, 씹을수록 수분이 배어나와 젓갈의 짠맛을 줄여 주었다. 이곳에서 갓김치를 판매하고 있는 이영숙 씨는 장사를 시작한지 올해로 18년째라고 한다. “여수 돌산 갓김치는 토양과 해풍이 조화를 이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해요. 갓이 향긋하면서도 부드러워요. 갓 본연의 향을 살리기 위해 저희는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요. 대신 멸치 육수를 끓여 천연 조미료를 만들어 맛을 내죠. 단맛이 적고 김치 양념 자체가 깔끔한 편이에요. 물김치는 육수에 사과, 배를 이용해 새콤한 맛을 내고요.” 갓김치를 소개하는 영숙 씨에게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건강한 삶의 모습에서 건강한 음식이 탄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 지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일상이 화려하거나 특별하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간다. 그러한 과정에서 삶의 향기가 배어나온다. ‘살아가는 것의 본질이 그런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한 일상을 그저 묵묵하게 살아나가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하는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이 어우러져 자신만의 삶의 향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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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_박정연
참고
두산백과(여수시, 향일암)
『한국의 섬, 전남여수』 이재언 저, 아름다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