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사회 불안증’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요

사람들의 시선이 유독 두려운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는가 하면, 직장 동료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도 시선을 의식해 주눅이 든다. 어떤 이는 은행 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서류에 서명하는 것마저 두려워한다.

사회적인 상황에서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심리적 신체적 불안을 느끼는 현상을 사회불안(social anxiety)이라 한다. 위의 사례들을 보면 사회불안이 꽤 심각한 질환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해마시라. 사회불안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지극히 정상적인 경험이다. 정신분석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인간을 히스테리와 강박, 편집증이 조금씩 섞여 있는 사람으로 기술했다. 사회불안 또한 ‘정상적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흔하게 겪게 되는 감정적인 현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긴장하게 된다.

다만 정상적인 사회불안과 병리적(psychopathologic)인 사회불안증은 구분해야 한다. 구분 기준은 불안 증상의 지속 시간, 강도와 빈도 등이다. 이중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현재의 불안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표 직전 긴장하다가 발표가 시작되면 이내 발표하는 행동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면서 초기의 긴장은 줄어든다. 하지만 사회불안증을 가진 이들은 발표 자체에 대한 불안감을 갖는다. 중요한 발표를 피하려 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해 발표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사회불안증이 심한 경우 사람들을 대하는 업무 자체를 회피하며 혼자서 일하는 직업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사회불안증은 삶의 방향에 제한을 주기도 한다.

사회불안증 극복, 자존감 키우기부터
사회불안증이 심한 이들에게 어떤 방법이 도움이 될까? 가장 먼저 자신의 증상이 일상적인 수준인지, 아니면 치료가 필요한 병리적인 수준인지 구분이 필요하다. 오랜 기간 사회불안증을 앓아온 경우 우울장애 및 수면장애 등이 동반될 가능성이 높다. 숙련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아 이에 대한 평가 및 치료를 병행하도록 한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치료를 받는다면, 질병이 만성화되어 삶이 잠식당하는 것을 조기에 막을 수 있다.

스스로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먼저 사회불안증이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사회적 상황에서 느끼는 불안은 대부분 타인의 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생각인 것이다. 강남역 한복판에서도 자신만 당당하다면 넝마를 줍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불안증에 시달리는 이들은 남들의 평가 한 마디, 눈빛 하나에 불안을 느낀다. 결국 사회불안증은 자존감이라는 중요한 요소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이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살게 된다.

자존감은 한순간에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는 성장기 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타인, 세상, 미래에 대한 시야를 ‘학습’한다. 이때 부모, 주변인들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좌절의 경험치가 쌓이면 자존감이 낮아진다. 이렇게 형성된 자존감은 일생동안 삶의 곳곳에서 드러나며 우리를 괴롭힌다.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 휘둘리고, 자신의 중심을 잡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다. 이것만은 꼭 기억하자.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이 없는 것은 그동안 겪어왔던 부정적인 경험을 ‘학습’한 결과일 뿐이다. 성장 과정에서 만난 이들이나 환경을 탓하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을 애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생생한 반추는 독이 된다.

먼저 낮은 자존감과 사회 불안으로 고통 받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과 행동, 둘러싼 환경부터 점검해 보자.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를 비하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비난받는 느낌이 익숙하기 때문에, 자신을 지지하고 칭찬해줄 사람보다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옆에 두지 않았는지 살펴볼 일이다. 옳고 그름을 이성적으로 따져 변화하기 보다는 익숙함을 찾는 것이 사람들의 본능이다. 자신과 주변을 잘 살펴보지 않으면 살아온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낮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들을 적어보고, 그것들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된다.

매일 칭찬 노트를 적는 것도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칭찬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이들이라도 ‘오늘 변화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 자체가 칭찬거리가 된다. 제시간에 출근한 것, 업무시간을 어기지 않고 성실히 일한 것, 사람들에게 의도를 잘 전달한 것 등도 훌륭한 칭찬 소재가 된다. 이것은 숙제가 아니다. 정말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연약한 어린아이를 위로하고 달래며, 칭찬하는 느낌으로 적어나가도록 하자. 마음에 울림이 있었던 칭찬은 쪽지에 적어 지갑에 넣어 다니거나,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적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다음은 자존감의 바닥을 다지는 단계다. 우선 작은 성취감부터 쌓아가자.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을 10가지 정도 기록해보자. 내가 가장 두렵고 불안한 상황부터 순위를 매긴다. 상황의 위계가 정해지면, 가장 낮은 강도의 단계부터 직면해 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다. 대개 ‘불안해하지 않기’, ‘떨지 않기’, ‘긴장하지 않기’ 등을 목표로 잡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불안의 억제나 완벽한 통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은 견디는 것이지 없앨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불안하더라도 끝까지 발표 마치기’, ‘긴장되더라도 대화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기’ 등 구체적인 행동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불안한 상황에서 얻은 작은 성취들을 통해 상황에 익숙해져 간다. 사회불안을 견디는 힘이 길러지는 것이다. 동시에 낮은 자존감도 조금씩 고개를 들게 된다. 겉보기엔 강심장으로 보이는 이들도 불안이 없진 않을 것이다. 단지 불안을 잘 견디고, 내적인 불안에 무너지기보다 자신이 수행해야 할 것들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나, 그리고 공동체의 시각도 조금은 바뀌어야
‘아싸’라는 신조어가 있다. 이는 아웃사이더의 줄임말로, 공동체 안에 잘 섞이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도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동체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비판적인 시각과 냉소적 조롱이 가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을 인정할 수 있는 포용력이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탈의존성의 시대다. 1인 가구, 비혼을 선언하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나 혼자 산다>에 등장하는 독신 젊은이들의 삶이 어색하지 않다. 이제는 공동체의 중심부와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을 삶의 수평선상에 놓고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시선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극복하는 일보다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다면, 자신만의 ‘소확행’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주변부에서 맴도는 ‘아싸’도 괜찮지 않을까. 행복한 ‘아싸’도, 불행한 ‘인싸’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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