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통영에서 거제까지 한 바퀴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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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쪽빛 바다가 넘실대는 항구도시, 숱한 섬들이 별처럼 박힌 한려수도의 중심이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 깃든 곳. 7월에 수국이 한창인 그곳으로 떠났다.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통영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깊이 연관된 곳이다. 경상남도 통영군은 과거 충무공의 시호를 본 따 ‘충무시’로 불리었다가 1995년 통영군과 통합했다. 충무공(忠武公)은 밖으로는 외적을 물리치고, 안으로는 법도를 바로 세운 인물들에게 내려지는 시호다. 주로 전쟁에서 공을 세운 무인들이 받았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시대 4번째로 충무공 시호를 받았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이 처음 삼도수군통제사로 있었던 ‘통제영’에서 유래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삼도(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수군(水軍)을 지휘하던 본영이었다. 이곳은 1603년 설립되어 1895년까지 명맥을 유지했지만, 일제강점기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많은 건물이 사라졌다. 당시 건축물 중 남은 것은 세병관(국보 제305호)뿐이다. 세병관은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현존하는 가장 큰 목조건축물 중 하나이다. 실제로 보면 그 위용이 대단하다. 세병이란 ‘은하수를 끌어와 피 묻은 병장기를 닦아 낸다’는 뜻이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기원하는, 결연하고 아름다운 뜻이 숨어 있다.

△ 신발을 벗고 세병관 마루에 올라앉았다. 통영시내가 내려다 보였다. 400여 년 전, 같은 장소에 있었을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통영 꿀빵
삼도수군통제영을 나와 중앙시장으로 걸었다. 통영의 특산품 ‘꿀빵’을 맛보기 위해서다. 꿀빵은 밀가루 반죽에 팥 앙금을 넣고 튀긴 빵 겉면에 물엿과 통깨를 묻힌 것이다. 맛이 꿀처럼 달아 꿀빵이라 불린다. 꿀빵은 한국전쟁 직후 통영의 여러 제과점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따뜻한 남도 기후에도 잘 상하지 않아 어부와 항구 노동자들이 간편하게 즐기는 간식이었다.

통영 중앙시장 부근에는 꿀빵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가게마다 시식대에 잘게 조각 낸 꿀빵이 놓여있다. 반지르르한 모습이 먹음직스러워보였다. 꿀빵을 한 조각 집어먹으면서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보경 아주머니는 시장에서 장사 한지는 오래되었지만 꿀빵을 팔기 시작한 것은 3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통영의 대표적인 먹거리가 꿀빵이죠. 꿀빵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이곳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꿀빵을 사세요. 통영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곳이 많거든요. 섬도 많고요. 간단하게 들고 다니면서 아메리카노랑 함께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아주머니의 말처럼 여행 내내 손에는 꿀빵 봉지가 들려있었다. 개수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달달하면서 투박한 맛이 쉬이 질리지 않는다.

동피랑
동피랑은 허름한 달동네였다. 오랜 세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은 어느 날 철거 위기에 놓였다. 통영시가 낙후된 마을을 철거하고 성곽과 통제영 동포루를 복원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2007년 시민단체 ‘푸른통영21’은 철거를 막기 위해 벽화공모전을 개최했다. 전국의 미술학도들이 모여들어 낡은 담벼락에 색색의 그림을 입혔다.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마을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명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담벼락마다 수놓인 알록달록한 벽화를 구경하며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올랐다. 이내 마을의 정상에 도착했다. 통영의 강구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육지와 바다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항구에 정박한 어선들과 그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다는 평화로웠다. 잔잔하게 흐르는 수면 위로 태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동피랑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잠시 앉아 쉬고 싶어졌다. 카페 한 곳에 들어갔다. 청춘시대라는 곳이었다. 실내의 복고적인 장식들을 보니 이곳의 청춘은 80년대를 가리키는 듯 했다. 음료를 주문하고 2층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구경하고 있었다. 교복을 입고 “딸”이라고 쓰인 노란 명찰은 단 꼬마 숙녀가 음료를 가져다주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꼬마 숙녀는 선희 씨의 둘째딸이었다. 카페는 선희 씨와 경애 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는 동피랑, 달동네 벽화마을이에요. 이곳에 7080 감성이 어울릴 것 같아서 복고풍을 주제로 잡았어요. 그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 여기 오면 LP판이나 옛날 교복을 보고 감회에 많이 젖는 것 같아요. 어떤 분은 눈물까지 글썽이시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추억은 소중하잖아요. 거기에 보람을 느끼죠.”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선희 씨와 경애 씨, 예지(11)와 예은이(8)

사이좋은 두 사람, 자매인 줄 알았건만 첫 만남은 비즈니스 관계였다고 한다.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도?” “어, 나도 나도!”하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두 사람은 카페를 차리고 싶다는 꿈을 나누었더니 현실이 되었다며 마주보고 웃는다. 선희 씨는 아이디어를 내었고, 경애 씨는 그림을 그렸다. 카페의 모든 것에 두 사람의 정성스런 손길이 닿아있었다.

해저터널
어느덧 통영에 어둠이 깔렸다. 다음 장소인 해저터널로 향했다. 해저터널은 통영과 미륵도를 연결하기 위해 1931년부터 1년 4개월에 걸쳐 만든 터널이다.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이곳에는 우리 역사의 애환이 서려있다. 일제강점기, 일본 어민들의 이주가 늘어나면서 물자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저 멀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웅웅거리며 울린다. 해저터널은 통영시민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어쩐지 적막한 기운이 감돈다. 콘크리트 구조로 되어 있어서일까, 음침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해저터널 반대편 입구로 나와 통영 바다를 따라 걸었다. 배가 고파왔다.

중앙시장 근처 동광식당에 들렀다. 새콤한 물회와 성게비빔밥을 주문하자 이내 반찬그릇들이 정갈하게 놓였다. 찬 하나하나에 맛과 정성이 담겨 있었다. 물회는 시원하고 달큰했다. 아삭한 야채에 꼬들꼬들한 해삼의 식감, 멍게의 향긋함이 더해졌다. 재료가 정말 신선했다. 성게비빔밥에는 성게알이 가득했다. 입안에 고소한 참기름의 풍미가 퍼졌고, 성게 알이 푸스러져 내렸다. 함께 나온 졸복 지리는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거제도 한바퀴
이튿날은 거제도로 향했다. 거제도는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투어를 신청했다. 사월의 모비딕이라는 여행사의 ‘거제 한 바퀴’ 투어였다. 약속한 장소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혼자 여행 온 여자 셋과 대장이 한 팀이 되어 거제도로 향했다. 투어리스트를 대장이라고 부르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투어는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대장이 직접 가보고 감명 깊었던 거제의 숨은 명소를 찾아간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함목 몽돌해변이었다. 탁 트인 쪽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햇빛에 반사되어 바다 수면이 반짝이고 있었다. 끊임없이 쓸려왔다 쓸려가는 파도에 몽돌이 감기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잡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대장이 가지고 온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지막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기림 대장은 3년 전에 통영으로 내려왔다. 29살의 청년이 하던 일을 접고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를 통영으로 향하게 한 것은 아버지의 말이었다. “아버지는 한평생 일을 해 오신 분이었어요.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한 번도 힘든 내색을 비춘 적 없는 분이셨거든요. 무엇이 힘든지 물어보았더니 “다른 선택을 하고 싶은데,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힘들다. 지켜야 할 소중한 가족이 있고, 여태까지 해온 것이 있는데 전부 내던지고 다른 것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고 힘들다. 아들, 너는 언제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통영은 힘들 때마다 그에게 품을 내어주던 곳이었다. 하염없이 통영을 돌아다니며 아픈 마음을 조금씩 치유해나갔다. 그러한 추억과 장소를 공유하기 위해 여행사를 시작했다.

대장은 여행객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그 본보기가 되고 싶었다고. “한 친구는 작년에 왔는데 올해 초에 다시 왔어요. 이유를 물으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는 항상 “잘하고 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고 해요. 그런데 통영으로 여행 와서 투어를 통해 사람들과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리움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고 해요. 그 말을 듣고 정말 보람을 느꼈습니다. 제가 꿈을 찾아 통영에 온 것처럼 여행객들도 자신의 꿈을 찾길 바라거든요.” 대장은 통영으로 내려와 여유를 되찾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행복하냐고 물었다. 대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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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_박정연
참고
『한국의 섬: 통영시』, 이재언 저, 지리와역사
국가문화유산포털(통영 삼도수군통제영)
퉁영 관광포털 U투어
나무위키(충무시)
두산백과(통영 꿀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