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인을 만나다] “암을 극복하고, 행복을 되찾다”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유경 교수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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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건강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이유경 교수는 2007년 유방암 2기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인생의 큰 고비였지만, 그녀는 특유의 긍정으로 씩씩하게 극복했다. 생활습관을 개선해 현재는 더욱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유경 교수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신이 겪어온 일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이야기하며, 간간히 부드러운 웃음을 곁들였다. 유방암을 이겨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인데, 웃을 때 살짝 잡히는 눈가의 주름이 그녀가 살아온 세월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Q. 교수님 안녕하세요. 유방암을 판정받은 지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무척 건강하신 것 같아요. 유방암을 진단받았던 당시의 이야기 부탁드릴게요.
제가 유방암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2007년의 일이에요. 목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감기에 걸렸는데 낫지를 않았어요. 수술경과도 확인할 겸 CT촬영을 했는데 폐 여러 군데에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폐로 암이 전이된 것처럼 보였죠. 나중에 알고 보니 암이 전이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암이 전이된 형태라고 생각해 유방암초음파 검사를 했어요. 초음파 검사를 해주셨던 분이 제 스승님이셨는데요. 검사 도중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고 유방암을 직감했습니다.

Q. 의사의 입장에서 일순간 유방암 환자가 되었을 때, 당시 기분이 어떠셨는지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세상 끝났다’, ‘이제 죽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에서 벗어난 것은 수술을 마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암세포가 내 몸 어디까지 침투해있는지 알고, 항암제 치료 계획이 수립되고 나니 상황이 정리되었거든요. 이제 치료에만 전념하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의사이기 때문에 병의 진행과정을 잘 알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환자 분들보다는 조금 더 확신을 갖고 치료에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유방암은 흔히 가족력이라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유방암에 걸렸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유방암에 걸렸던 이유는 2가지라고 생각해요. 비만과, 충분하지 않았던 모유 수유 기간이죠. 가족력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걸렸어요. 저는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운동도 전혀 하지 않았어요. 한창 살이 쪘을 때는 지금보다 20~30kg은 더 나갔어요. 잘 알려진 대로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 됩니다. 몸 속 지방은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여성 호르몬을 만들어내어 암 발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모유 수유가 유방암 위험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둘 낳았어요. 모유 수유한 기간은 모두 합쳐 두 달 남짓이에요. 상당히 짧은 편이죠. 이 두 가지 요인이 더해져 유방암이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해요.

Q. 유방암을 이겨내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힘든 과정을 견뎌내고 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는지요.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이야기 부탁드려요.
유방암이 아니었으면 저는 지금도 건강하지 않은 생활습관을 갖고 살고 있었을 거예요. 지금은 매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먹고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등 필수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려고 노력해요. 과일을 좋아해서 특히 제철 과일을 즐겨먹는 편이에요. 채소를 살짝 쪄서 초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요. 움직임도 확연히 많아졌어요. 유방암이 발병하기 이전에 제가 했던 운동은 숨쉬고, 말하고, 먹는 것이 전부였거든요(웃음). 지금은 병원에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요. 남편과 숲길도 자주 걸어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유방암은 하늘이 제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일상의 아름다움을 풍요로이 느낄 수 있게 되었거든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나뭇잎의 고운 색과, 길거리에 널린 쥐똥나무의 향기 같은 것들이요. 언제나 존재하던 것들에 이제야 눈길이 머무르게 되었어요. 그리고 내 주변에 나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되었고요.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유방암 덕분에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유방암을 극복하는데 남편 분께서 큰 힘이 되어주셨다고 들었어요. 같은 병원 신장내과 의사인 남편 분과 금슬이 좋기로 소문이 자자해요.
유방암을 이겨내면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몸을 많이 움직이게 된 것이에요. 남편의 역할이 컸습니다. 운동을 싫어하는 저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남편이 방안을 낸 것이 ‘숲길 걷기’였어요.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서 함께 걷기 좋잖아요. 좋은 공기 마시면서요. 완만한 숲길부터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이제는 어딜 가든 남편을 믿고 따라 나서요. 따라 걷다보니 즐겁더라고요. 이제는 제가 먼저 말해요. “남편, 산이나 한번 다녀올까?”라고 말예요.

함께 나이 들어가며 이제는 남편과 정말 친구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저는 남편이 언제, 어디서든 제 편일 것이라고 믿어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아프고 나서 그러한 믿음이 더욱 강해졌죠. 이런 굳은 신뢰가 상당히 여러모로 저를 안정되게 해요. 남편이라는 존재 자체가 제게 안정감을 줍니다.

Q. 정말 부럽습니다. 그럼 교수님, 행복한 부부관계를 위해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서로 사랑하는 관계일지라도 다른 인격체이기 때문에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어요. 그것을 이해하려는 반복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해요. 그 사람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 같지 않거든요.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없어요.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많은 세월이 걸렸어요.

제가 설거지를 하고 있어요. 그때 남편은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몰라요. 이전에는 도와주길 바라는 제 마음을 말하지 않고, 그저 알아주기만을 바랐던 세월이 있었어요. 이제는 “여보, 이것과 이것 도와주세요.”라고 말해요. 그렇지 않으면 남편은 자신이 끼어들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 몰라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부부뿐만이 아니라 부모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정말로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정확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에요.

Q.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알면서도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부모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런 것 같아요. 부모의 바람이 아이에게 투영되고는 하잖아요. 부모로서 교수님은 어떤 모습일지 궁급합니다.
저는 세상일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저희 아이가 0점 받은 시험지를 가져와요. 그럼 저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제가 0점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인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0점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잖아요. 나한테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나와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거든요. 아이마다 지닌 장점이 달라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고, 관계 형성을 잘하는 아이가 있어요. 아이가 자신의 장점에 주목하게 만들 것인지, 단점에 주목하게 만들 것인지는 부모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희 아이들이 가진 고유한 성향에 주목하고자 노력해왔어요. 쉽진 않았지만요. 두 아이를 그렇게 키웠어요. 다시 키워도 같을 거예요. 다만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한 점이에요. 더 많이 안아주고 더욱 부대끼면서 놀아주지 못한 점이 후회가 돼요.

Q.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살면서 종종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당시엔 힘들지라도, 지나고 보면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많이 성장하게 되죠. 고민을 거듭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한 뼘 커나가는 거예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를 거듭하며 성장해 나가죠.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는 자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를 알게 될 거에요. 자기가 가진 그릇보다 큰 그릇을 욕심내면 채우느라 힘들 것이고, 자신의 그릇에 비해 작은 그릇에 담기면 그것도 견디기 힘들 거예요. 아이가 자신의 크기에 맞는 그릇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내 아이가 길을 걷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주면 당장 부모 마음은 편하겠지만, 그저 참고 기다려주는 것이에요.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면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 많이 아플 거예요. 하지만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에는 교수님께 행복의 의미를 여쭐게요. 행복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예전에 항암치료를 할 때 머리카락이 전부 빠졌어요. 그때 액세서리에 그렇게 집착했습니다. 계속 새로운 액세서리를 사들였지만 만족감이 채 3달을 못 갔어요. 결핍에서 발현된 헛된 욕구였죠. 그것을 깨닫고 나니 욕구가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맛있는 것을 맛있게 먹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으니 그것이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삶을 다시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 시점부터 이 순간을 아주 충실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쉬더라도 잘 쉬고, 먹더라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죠. 남편 따라 열심히 걷고 난 후 마시는 맥주 한잔의 시원함, 그리고 이러한 여정을 함께 할 이가 있다는 이 순간의 행복을 충분하게 누리려고 해요. 흘러가고 나면, 다신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순간에도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을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부탁드려요.
절대로 병에게 쫄지 마세요.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병과 싸우면 됩니다. 최선을 다해 병과 싸우기 위해서는 치료를 열심히 받고, 내가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해요. 내가 할 일은 내 몸의 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 잘 먹고, 잘 움직이는 것입니다. 유방암 2기를 진단받고 10여 년이 지나도록 재발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제가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여러분도 부디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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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_박정연
도움_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홍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