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담양에서 만난 청명한 여름

무더위가 연일 지속되는 날이었다. 이번 여행지는 담양이었다. 대나무 숲에서 맞이할 시원함과 청량감을 기대하며 그곳으로 떠났다.

죽녹원
담양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죽녹원’이 있다. 죽녹원은 ‘대나무와 녹차가 어우러져 사방에서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공원’이라는 뜻으로 담양군에서 조성한 5만여 평의 대나무 숲이다. 무더운 여름철 시원한 대나무 숲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곳에서 멋쟁이 신사 한 분을 만났다. 김경오 문화관광해설사다. 밀짚으로 만든 중절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담양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며 인사를 전했다. 관광객들에게 담양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애향의 마음으로 문화관광해설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진지한 얼굴에서 담양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졌다. “죽녹원의 매력은 죽림욕에 있습니다. 대나무에서는 다량의 음이온이 발생합니다. 편백나무 못지않은 피톤치드를 뿜어내지요. 담양 죽녹원에 오시면 1시간 정도 천천히 걸어보세요. 몸과 마음의 건강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나무는 참 특이한 식물이다. 대나무는 하루에 최대 1m 이상 성장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쑥쑥 자라나 45일이면 성장을 마친다. 또한 대나무는 일생에 딱 한번 꽃을 피워낸다. 이렇게 꽃을 피워낼 때 밭의 모든 대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워낸다. 줄기를 옆으로 뻗는 대나무의 특성상 뿌리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꽃을 피워낸 후에는 나이든 대나무도, 어린 대나무도 모두 함께 고사하고 만다. 줄기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영양분을 전부 소모하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그렇게 일생에 단 한번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고, 장렬히 전사한다. 대나무 숲의 장엄한 서사시 같다.

대나무를 구경하며 죽녹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걷다가 숨이 차면 잠시 앉아 쉬었다. 담양 대나무 숲은 쉼 그 자체였다. 하늘까지 쭉쭉 뻗은 대나무를 만져보았다. 손끝을 통해 시원한 온도가 전해졌다. 한줄기 바람이 불어오면서 댓잎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맑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온통 싱그러운 순간이었다.

초암 박인수 훈장
죽녹원 산책 중 송강정(松江亭)에 들렀다. 이 정자는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을 지은 송강 정철(1536~1593) 선생이 머물렀던 죽록정(竹綠亭)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송강 정철 선생이 아닌 초암 박인수 훈장이 머물고 있다. 초암(草庵)은 소박한 띠 집이라는 뜻이다.

요즘 시대에 보기 힘든 훈장님이라니, 어떤 가르침을 주실까 궁금했다. 박인수 훈장은 먼저 명심보감의 구절을 인용해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명심보감은 명심(明心), 즉 마음을 밝게 하는 보감입니다. 명심보감에는 人生不學 冥冥如夜行(인생불학 명명여야행)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사람이 태어나 배우지 않으면 어둡고 어두운 밤길을 가는 것과도 같다는 뜻입니다. 배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절, 인간된 도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박인수 훈장은 인간됨을 강조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성품은 하늘에서 명하는 것입니다. 자네는 기자, 작가라는 성품을 타고 났고,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성품을 타고 났지요. 자신이 타고난 고유의 성품을 따르는 것이 바로 도(道)입니다. 도라는 것은 쉼이 없다는 것, 끊임없이 연마하라는 것이지요.”

이야기를 마친 그는 붓을 쥐고 부채에 멋들어진 참새 한 마리를 그려냈다. 그리고 ‘아침이 밝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재 너머 낟 알갱이 주우러 가봐야겠지!’라는 글귀를 적어주었다. 부지런히 자신의 길을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이었다.

담양 떡갈비
죽녹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현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덕인 떡갈비 집으로 향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갔다. 도착해서 떡갈비 1인분을 주문했다. 한상 가득 차려졌고, 불판에는 떡갈비 3점이 올랐다. 푸근한 인상의 할머니가 떡갈비를 맛있게 구워주셨다.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다. 그저 마주보고 몇 번 웃었을 뿐. 그런데 할머니의 푸근한 미소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관방제림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관방제림으로 가기 위해 영천강을 따라 걸었다. 담양에 오면 필수 코스로 손꼽히는 곳인데, 관광지라기보다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시골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할아버지들이 나무그늘이 드리운 정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꽥꽥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니 거위 두 마리가 뒤뚱거리고 있었다. 이 두 마리 거위는 지상산책을 마치고 강으로 돌아가는 길인 듯 했다. 느릿느릿 경치를 즐기며 걷다보니 어느새 관방제림에 도착했다.

관방제림은 조선시대에 홍수의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은 뚝방이다. 이곳에서 200년~300년 된 고목들이 물길 따라 이어지며 장관을 이뤄낸다. 1.6km에 걸쳐 조성된 이길에는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벚나무 등 176여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 아름다운 숲길을 천천히 걸어도 좋고,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도 좋다.

담빛예술창고
아무리 풍경이 아름답다 한들, 뜨겁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열에 지친 무렵이었다. 관방제림 조각공원을 지나갈 때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담양군청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담빛예술창고’로, 폐허가 된 옛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다. 지역민들의 공연장 겸 전시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국내에 유일한 ‘대나무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 이 오르간은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 장식적인 요소로도 훌륭하지만,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와 주말 오후 4시 30분에 이 곳을 찾으면 오르간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었다. 첫 곡은 헨델의 <울게 하소서>였다. 파이프 오르간의 특유의 짙은 울림이 실내에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카페가 순식간에 공연장으로 탈바꿈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는 호남신학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송은영 씨였다. 송 교수는 국내 대학에서 오르간을 전공한 뒤 스위스 바젤국립음대와 독일 칼슐레 국립음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국립음악원에서 수학했다. 그녀에게 파이프 오르간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의 여왕이라고 불려요. 이 한 가지 악기로 낼 수 있는 음역이 굉장히 넓거든요. 악기 하나로 오케스트라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저한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담빛예술창고의 파이프 오르간은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총 797개의 파이프 중 5개를 제외한 나머지 792개가 대나무로 제작되었다. 파이프 오르간은 규모가 크고 구조가 무척 복잡한 악기이다. 국내에서 대중적인 악기는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 무더운 8월에는 이곳을 찾아 대나무 녹음 짙은 담양의 정취와 파이프 오르간의 매력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가의 노트] 통영에서 거제까지 한 바퀴 >> http://hirawebzine.or.kr/14250
[여행가의 노트] 낭만의 여수 밤바다 >> http://hirawebzine.or.kr/14073
[여행가의 노트] 부산, 언제 가도 좋은 그 곳 >> http://hirawebzine.or.kr/13711
[여행가의 노트] 봄, 경주, 역사유적지구 >> http://hirawebzine.or.kr/13493
[여행가의 노트] 군산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 http://hirawebzine.or.kr/12912

(Visited 38 times, 1 visits 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