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명화] 벌거벗은 영혼, 에곤 실레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 1912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에곤 실레(Egon Schiele, 1890~1918)는 1890년 오스트리아 빈의 근교 툴른에서 태어났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실레는 어릴 적부터 예술적인 재능을 보였다. 연필 한 자루만으로 바퀴와 굴뚝을 그려냈던 실레는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창가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 한권을 그림으로 전부 채웠다. 주제는 주로 기차였다. 그의 부모는 실레가 화가의 길을 가는 것을 반대해 그가 그린 그림을 전부 불태워버리곤 했다. 그럴수록 실레는 자신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어 그림 그리기에 몰두했다.

실레는 16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지만, 보수적인 그곳의 학풍에 적응하지 못하고 곧 그만두게 된다. 화가로서 정규 코스를 박차고 나온 이 무명의 화가는 1907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를 만나 실력을 인정받으며 빈 분리파*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빈 분리파: 구스타프 클림트를 주축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예술가 집단. 낡고 판에 박힌 사상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인간의 내면적 의미를 미술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누드, 자화상> 1910,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성 누드> 1910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에곤 실레의 그림은 개성이 뚜렷하다. 그림을 보면 그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윤곽이 분명하고 빨간색과 노란색, 검정색을 주로 사용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한 결 같이 마르고 호리호리하며, 뒤틀리고 기이하다. 얼굴은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에로틱하면서 동시에 긴장과 불안감이 엿보인다.

<발리의 초상> 1912년, <검은 스타킹을 신은 발리 노이질> 1913년

에곤 실레의 여인으로 두 명을 꼽을 수 있다. 모델 발리 노이질과 아내 에디트 하름스이다. 발리는 실레가 21살 때 클림트의 소개로 만난 여인이다. 둘은 곧 동거를 시작했고, 그녀는 실레의 그림에 가장 파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실레는 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파격적인 그림들을 계속 그렸다. 한번은 여동생인 게르티 실레의 누드를 그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성인이 된 후에는 풍속을 해치는 스케치를 했다는 이유로 3주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이때 발리는 실레가 감옥에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에디트 실레의 초상> 1915년, <오른쪽 다리를 잡고 있는 예술가 아내의 초상> 1917년

하지만 실레는 헌신적이었던 발리를 뒤로 하고, 이웃집에 살고 있는 여인 에디트 하름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실레와 에디트가 결혼식을 치르자 실레의 곁을 지켜왔던 발리는 떠난다. 실레는 에디트와 평온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간다. 새롭게 꾸린 가족은 실레에게 큰 기쁨이 된다.

실레는 1918년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가족>을 그렸다. 그림은 마치 벤다이어그램의 A와 A’ 같이 표현되었다. 아기와 에디트를 실레가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것 같다. 그림에는 단란한 가족에 대한 그의 희망이 담겨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곧 닥쳐올 불안을 알았던 것일까, 그림 속 세 사람의 시선은 각기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포옹> 1917년, <가족> 1918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사랑하는 여인과 가정을 꾸리고 화가로서 성공을 거뒀지만 실레의 행복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1918년 빈 분리파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 중이었던 에디트가 스페인 독감에 걸린 것이다. 시름시름 앓던 에디트는 뱃속의 아기와 함께 세상을 떠나게 된다. 병간호를 하던 중 독감에 전염되어 실레도 그녀와 아기의 뒤를 따르게 된다. 도발적이고 적나라한 인체 묘사로 인간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에곤 실레. 예술적 열망과 야망을 캔버스 위로 거침없이 옮겼던 그는 28살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에곤 실레가 앓은 스페인 독감(인플루엔자)은? 
스페인 독감은 1918년~1920년 동안 전 세계 2,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독감으로,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불린다. 21세기에도 독감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독감(인플루엔자)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3년(2015년~2017년) 사이 6만 명가량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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