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가을의 초입에서 만난 안동 하회마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과 같고,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번에 읽을 페이지는 ‘안동 하회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곳에는 기와집과 초가집이란 과거 전통 주거 방식을 이어오며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눈앞에 펼쳐질 안동의 이색적인 풍경과 사람들, 향토의 맛을 기대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안동 하회마을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豊山 柳氏)들이 모여 사는 씨족마을이다. 풍산 류씨는 안동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가문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임진왜란에서 큰 역할을 했던 재상 류성룡과 그의 형 류운룡, 아들 류진 등이 있다. 대의를 중시했던 선조들의 선비정신을 받들어 600년간 유교문화를 고수해온 이곳은 현존하는 고건축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민속 전통과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8월 마을 일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낙동강 건너편으로 보이는 부용대와 느티나무 고목이 있는 삼신당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유유히 흐르는 하회((河回)마을은 ‘물이 돌아나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 위치한 부용대에 올라서면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마을 중심에는 630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 민속신앙의 중심인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에게 안녕과 무병, 풍년을 비는 동제가 치러진다. 나무 주위에는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염원이 담긴 흰색 소원지가 빼곡히 달려있다.

△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장. 이곳에서 매주 수요일~일요일 오후 2시에 하회별신굿 탈놀이 공연이 펼쳐진다.

하회마을의 초입에 들어서면 탐방로가 좌우로 나뉜다. 좌측(북촌)으로 가면 풍산 류씨 대종택인 양진당과 북촌댁이 있고, 우측(남촌)으로 가면 서애 류성룡 종택인 충효당과 남촌댁이 나온다. 하회마을을 거닐다 보면 위용 있는 기와집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초가집이 정겨움을 더한다. 초가집은 주로 소작인들이 살았다.

△ 양진당과 충효당 현판. 충효당은 평소 충(忠)과 효(孝)를 중시했던 류성룡 선생의 뜻을 받들어 이름을 지었다.
현판은 조선 중기 명필인 미수 허목이 서애 류성룡의 학덕을 기리며 글씨를 썼다.

20번 초가집 민박에서 맛본 안동찜닭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20번가 초가집 민박에서 하룻밤 잠을 청했다. 음식 솜씨 좋다고 소문난 이 집에서는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주는 안동찜닭과 간고등어를 맛볼 수 있다. 처음 마주한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할머니의 넉넉한 인품이 느껴졌고,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60년도 더 되었을 거야.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해. 그때는 가문만 보고 시집을 왔거든. 신랑 얼굴도 모르고 안동으로 시집을 왔어. 당시에는 시집을 왔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살아야 했어. 친정 욕되지 않도록… 그렇게 살아온 거야. 그래도 좋은 추억이 많아. 봄이 오고 꽃이 피면 남편이랑 병산서원, 옥연정사에 가서 화전놀이를 하고 그랬어. 색시라서 얌전히 윷만 놀다가 왔어.”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병환으로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얼굴에도 순간적으로 생기가 돌았다.

할머니의 안동찜닭을 맛 볼 시간. 김치와 깍두기, 열무김치, 간장 깻잎 등 시골 반찬과 함께 찜닭이 한상 차려졌다. 닭고기에 걸쭉한 간장소스를 듬뿍 묻혀 입에 넣었다. 짭조름하면서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졌다. 시중의 찜닭과 비슷한 듯 깊은 감칠맛이 느껴졌다. 닭고기는 쫄깃했고, 한입 베어 문 감자는 쫀득했다. 이로서 맛에 대한 조심스러운 첫 탐방이 끝났다.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찜닭은 무공해로 요리해. 옳은 참기름을 넣고 만들어.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 성의껏 음식을 만들어주려고 해.” 맛의 비결은 간단했다. 정직한 재료를 고수하는 신념과 60년 간 부엌을 지켜온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병산서원, 봉정사
다음 행선지로 하회마을과 함께 꼭 찾아야 할 곳으로 손꼽히는 병산서원(屛山書院)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교 건축물로, 서애 류성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한 서원이다. 걸출한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보존된 47개 서원 중 하나다.

△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병산이 위치한다. 한적한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열중하기에 그만이었으리라. 함박 피어난 배롱나무가 사랑스럽다.

봉정사는 봉황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종이로 만든 봉황을 바람에 날려 보내어, 그 봉황이 내려앉은 곳에 세운 사찰이다. 이곳에는 현존 국내 최고(最古) 목조건물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다포계 건축물의 최고인 대웅전(국보 제311호), 부처님이 설법하는 모습을 담은 후불벽화 ‘영산회상도’가 있다. 한국불교의 원형을 잘 보존해온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6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맘모스제과, 버버리찰떡
안동에는 유명한 빵집이 있다. 맘모스 제과다. 이곳은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과 함께 전국 3대 빵집으로 손꼽힌다. 크림치즈빵이 별미로, 동그랗게 생긴 빵 안에는 크림치즈가 듬뿍 들어있다. 크림치즈의 고소함과 빵의 부드럽고 쫄깃한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안동에는 버버리 찰떡도 있다. 이 찰떡은 일제강점기, 안동의 한 철길 밑에서 할머니가 찰떡을 팔면서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찰떡은 크기가 크고 팥고물이 가득 묻어있었다. 한입 가득 베어물면 입안에 쫀득한 찰떡이 가득해 말을 잘 할 수 없어 벙어리처럼 된다고 하여 ‘버버리 찰떡’으로 불리게 되었다. 소박한 이 찰떡은 잘 가공된 떡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직한 맛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80년이 넘도록 안동시민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산청식당
안동에서 생선은 무척 귀한 식재료였다. 바다와 멀리 떨어져있는 지리적 특성상 안동까지 고등어를 신선하게 운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동 사람들이 선택한 것이 염장법이다. 고등어를 소금에 절여 안동까지 상하지 않게 운반할 수 있었고, 짭조름하게 간이 배어 맛까지 더욱 좋아졌다. 그렇게 간고등어는 안동의 명물이 되었다.

간고등어 전문점인 산청식당에 들렀다. 안동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알려진 이곳은 한 TV 채널에서 코미디언 이영자가 안동 맛집으로 추천하며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간고등어 정식이 한상 차려졌다. 채소가 종종 썰려있는 그릇에 밥을 넣고 뜨끈한 청국장을 한 국자, 두 국자 넣었다. 야무지게 밥을 비벼 한 수저 떠먹었다. 입안에 구수한 청국장의 향이 퍼졌다. 바삭하게 구운 간고등어는 눅진한 듯 짭조름한 것이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주인아주머니에게 맛의 비결을 물으니 ‘매일 아침 시장에 들러 구입하는 신선한 식재료 덕분’이라고 했다. 반찬의 가짓수는 11가지나 되었다. 식당 운영 21년이면 매일 아침 이 정도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일까. 한낱 여행객은 음식을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맛보고, 그렇게 안동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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