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이제 그만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강박증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은 실험을 하나 해보자. 간단하다. 눈을 감고 분홍색 코끼리를 떠올려보는 거다. 본 적이 없다고? 그럼 코끼리의 모습에 분홍색을 덧씌워보자. 분홍색 코끼리의 이미지를 10초 정도 떠올렸으면, 이번에는 핑크색 코끼리의 모습을 전혀 떠올리지 않도록 해보자. 어떤가?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분홍색 코끼리의 모습은 더욱 선명하게, 그리고 자주 떠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마음에서 빚어내는 생각과 이미지는 억지로 없애려 하면 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불편한 것을 억누르려 들면, 불편함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이런 현상은 강박증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그 형태가 유사하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강박 : 강박증이란 ?
강박증(강박장애, Obsessive-Compulsive Disorder)을 가진 이들은 늘 고통스럽다. 그들은 머리 안에서 만들어진 생각들의 무게에 깔려 신음한다. 강박관념의 유형은 꽤나 다양하다. 더러운, 혹은 더럽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접촉한 후 ‘당장 씻어내야’ 사그라지는 오염에 대한 강박이 있는가 하면, 흐트러진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리 정돈에 대한 강박도 있다. 외출한 후 가스레인지는 끄고 나왔는지, 현관문은 잘 잠그고 왔는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외출 후에도 내내 마음이 찜찜한 확인에 대한 강박도 있다. 떠오르는 생각의 형태와 내용의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강박증에는 공통점이 있다. 강박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불안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강박증은 심한 불안과 긴장이 초래되는 정신질환이다. 이러한 이유로 2013년 정신의학 진단분류체계가 개정되기 전까지 강박증은 불안장애의 범주에 속해있기도 했다.

강박증의 증상은 크게 1) 강박사고(obsession)와 2) 강박행동(compulsion)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강박사고는 불현 듯 떠오른 후 머리를 떠나지 않는 불편한 생각을 말한다. 불편한 생각으로 불안이 겹치면서 이를 회피하고자 하는 행동이 나타난다. 이것이 강박행동이다.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이 떠오르면 이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특정 행동 패턴이 만들어지고, 결국에는 그것이 습관화(habituation)된다. 예를 들어 외출 후 가스레인지를 켜고 나온 것은 아닌지, 혹은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열어놓고 온 것은 아닌지 같은 불길한 생각이 떠오르면 즉각 집으로 뛰어간다. 몇 차례고 확인해야만 안심이 된다. 불안을 유발하는 생각이 확인을 통해 가라앉게 되면, 이 상황이 반복되면서 점차 강박사고 이후의 특정 행동이 조건화(conditioning)되는 것이다.

강박행동이 눈에 띄는 행동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다소 미묘한 수준의 강박행동도 있다. 속으로 기도문을 외거나, 속으로 7까지 숫자를 세는 행동을 7번 반복해야만 마음이 가라앉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느 쪽이든 강박사고로 인한 불안과 이어지는 강박행동은 삶을 제약한다. 심한 경우는 강박사고를 떨쳐내려는 몸부림으로 하루 중 대부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도 강박증에 따른 불안으로 곪은, 이들의 속내는 잘 알지 못한다.

강박관념(강박)과 강박증은 구분되어야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강박관념과 강박증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위에서 밝힌 대로, 강박증은 불안을 일으키는 강박사고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강박행동이 주된 증상이다. 두 증상으로 인해 일상생활, 사회생활, 대인관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반면 강박관념은 말 그대로 긴장이나 압박을 주어 어떠한 행동을 유발케 하는 생각이다. 물론 둘 사이의 완전한 구분은 힘들지도 모른다. 또 강박관념이 심한 불안을 동반하고, 특정 행동이 조건화되어 강박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강박관념과 강박증은 스펙트럼의 양 극단에 위치해 있으며, 강박관념은 건강한 정상의 범주 내에 있다고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정상적인 강박관념은 누구에게나 있다. 불현 듯 불편한 생각이 떠오르는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1978년 124명의 정신적으로 건강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브리튼을 비롯한 몇 명의 연구자들이 정신 경험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80%에 이르는 대학생들이 강박증 환자에게서나 볼 법한 수준의 생각이나 이미지를 경험했다고 한다. 강박사고의 내용은 불결함에 대한 불쾌감이나 다리미 스위치에 대한 불안과 같은 흔한 종류의 생각들만이 아니었다. 타인을 이유 없이 눈앞에 있는 과도로 찌르거나 높은 곳에서 밀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 자신이나 가까운 이에게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 같다는 끔찍한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비정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상적인 강박관념은 이러한 생각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채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또한 정상적인 인간을 정의하며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치료받아야 할 강박인지에 대해 스스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삶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강박관념이라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제 그만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 강박증의 치료 방법
뇌 과학이 발전하면서 강박증을 비롯한 여러 정신질환의 신경생물학적 원리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다른 질환들과 비교해 강박증은 뇌의 특정 회로를 통해 증상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이 비교적 잘 규명되어 있다. 이를 치료하는 약물 효과 또한 잘 입증되어 있다. 주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가 가장 큰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투약 이후 강박 증상을 일으키는 뇌 회로의 활성화가 줄어드는 것이 많은 연구 결과 밝혀졌다. 강박 증상으로 유발되는 불안과 삶의 제약으로 인한 이차적 우울증 등에는 적절한 기간 동안 적정량의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다.

약물치료 못지않게 비약물적 치료 또한 효과적이다. 직면 및 반응방지(Exposure & Response Prevention) 기법이 큰 효과를 보인다. 이것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분류한 뒤, 강박사고에 반응하는 빈도와 시간을 체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정리정돈에 대한 강박사고(Symmetry Obsession)를 가진 이에게 흐트러진 물건들을 보여준 후(직면), 현 상태의 불안양상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게 한다. 그 후 정리정돈과 같은 강박행동을 하지 않고 견디도록 돕는 것(반응 방지)이다. 대개 강박행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이 점차 증가해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결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준다. 강박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불안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감소하며, 결국 처음의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어떤 불안장애도 마찬가지지만 불안을 ‘0’으로 만드는 약물이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불안에 대한 내성, 즉 ‘견디는 힘’을 기르는 데 있다. 강박행동을 멈추면 불안과 초조함이 온 몸을 휘감게 되지만, 이를 견디는 시간을 10분, 20분, 30분으로 점차 증가시켜 나간다.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개념이 다소 어색하겠지만, 반복만이 습관으로 정착될 수 있다.

어떤 강박증에서는 강박행동보다 왜곡된 강박사고와 그에 따른 심한 불안, 초조감이 더욱 고통스럽다. 이럴 경우 직면 및 반응방지 기법 외에도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강박사고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와 그릇된 책임감, 왜곡된 인지를 교정해주는 치료법이다. 몇몇 연구에서 이러한 비약물적 치료가 약물치료와 동등한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치료 전략을 알고, 적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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