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전주의 역사를 품고, 가을밤을 누비다

달 밝은 가을밤에는 느긋하게 거닐고 싶다. 풀섶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 기울이며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는 전주였다. 이번 여행기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살아있는 전주 한옥마을에서 보낸 하룻밤 이야기다.

가을 밤, 전주 한옥마을
전주 문화재야행이 펼쳐지는 밤이었다. 문화재야행은 각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공연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문화재청에서 기획한 문화관광 프로그램이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손꼽히는 전주는 그윽한 밤의 한옥마을을 거니는 야행 명소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행사는 조선의 역사가 담긴 문화재 야간개방과 공연, 이야기, 음식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신 경기전이다. 경기전은 1410년 태종이 창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이 고쳐지었다. 현재 경기전에 있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1872년 화가 조중묵이 영희전 영전을 모본으로 새로 그린 것이다. 옮겨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 제 317호로 지정되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한옥마을에는 호롱불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그 빛을 따라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분주하게 오고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들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전 돌담길 아래에서 이야기술사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전주의 역사 이야기를 펼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거리의 화공들은 사람들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고 있었다. 밤하늘은 맑고, 밤공기는 쾌청했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걷자 한옥마을과 남부시장을 잇는 풍남문에 닿았다. 국악 공연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구슬픈 노랫소리와 가야금의 선율이 웅장한 성벽을 타고 흘렀다. 가족, 연인과 함께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옛 노래를 들으며 깊어가는 전주 한옥마을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남부시장
국악공연을 관람하고, 남부시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전주 남부시장은 조선 중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시장이다.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했던 전주에는 많은 시장이 있었다. 전주성 4개의 성문마다 장이 열렸는데, 그 중 남문과 서문의 시장이 가장 컸다. 일제강점기에 이 두 곳이 통합되면서 남부시장은 전주를 대표하는 시장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 시장 2층에 청년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예술품과 구경거리 가득한 상점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최근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다양한 먹거리를 선보이는 야시장이 열리면서 남부시장은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별빛쉼터
전주 한옥마을에서 하룻밤 머물 곳은 별빛쉼터였다. 이름마저 예쁜 이곳은 정인돈 씨와 김규임 씨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별빛쉼터를 운영한지는 3년 되었어요. 이곳에 오신 분들이 편안히 머무르다 가셨으면 해서 친환경으로 시공했어요. 벽재는 전부 황토벽돌이에요. 생황토를 압축한 벽돌을 쌓고 참숯도 20kg 두 포대를 넣었어요.” 툇마루에 앉아 정원을 둘러보았다. 정원의 푸릇함과 황토의 색감이 어우러져 눈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담벼락에 피어난 이름 모를 보랏빛 꽃이 사랑스러웠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두 사람은 손을 꼬옥 잡고 있었다. 45년 전, 아저씨는 군인 장교였다. 이종사촌 매형의 주선으로 옆집에 사는 꽃다운 처녀와 맞선을 보았다. 두 청춘 남녀가 만났고, 이튿날엔 결혼을 약속했다. 그리고 한 달하고 사흘이 지난 뒤 결혼식을 치렀다. 속전속결이었다. “옛날에는 교통편도 안 좋은데…. 강원도 부대에서 오가려면 힘드니까, 내려온 김에 약혼한 거예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아저씨와 달리 아주머니는 부끄러운 듯 말했다. “나이를 먹으니까 부부밖에 없어요.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사는 거예요.” 아주머니가 이야기하면 아저씨가 거들었고, 아저씨가 이야기하면 아주머니의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반세기를 함께 해온 두 사람에게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삼원당 한약방
이튿날이 밝았다. 숙소에서 전주 한옥마을로 걸어가는 길에는 삼원당 한약방이 있었다. ‘삼 원 당 한 약 방’이라고 크게 쓴 옛날식 외벽이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입구에는 사주팔자라고 적혀있었다. 두어 번 그곳을 지나쳤고, 세 번째에는 불쑥 들어갔다. 그곳에는 올해 81세인 김종유 할아버지가 계셨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정했고 밝은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흰 종이에 생년월일시를 적어내자, 할아버지는 돋보기로 손바닥만한 책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곤 백지에 느릿느릿 한 글자씩 적어 내려갔다. 녹이 슨 할아버지의 서류철은 적어도 20년은 된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서재를 둘러보니 곳곳에 가족사진과 본인, 자손들의 각종 면허증이 가득했다. 할아버지의 삶이 응축된 장소였다. 그 순간만큼은 할아버지가 살아온 세월로 회귀하는 듯했다.

김종유 할아버지는 1967년도부터 한약방을 운영해왔다. 한약방을 운영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자란 자손들은 의사가 되고, 약사가 되었다. 사위와 며느리도 의사와 약사가 들어와 의료인 가문을 이루었다. 가문을 성공적으로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할아버지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살되, 운명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대답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연기가 밑에서 위로 피어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노력과 뜻을 지니고 항상 정진해야 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것처럼, 집념을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도전하면 결국 마음먹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할아버지의 밝은 눈빛이 반짝였다.

자만벽화마을
한옥마을 오목대 입구에는 풀꽃이 그려진 에메랄드빛 육교가 있다. 이곳을 지나면 자만 벽화마을로 이어진다. 자만 벽화마을은 한국 전쟁 때 피난민들이 하나둘 모여 정착한 곳으로, 2012년 녹색 둘레길 사업으로 벽화마을로 재탄생했다. 40여 채의 주택에 알록달록한 벽화가 그려지면서, 잊혀져가던 달동네가 전주의 문화예술 공동체 마을로 탈바꿈했다. 벽마다 화사한 색감의 그림이 가득하다. 구불구불한 골목을 천천히 걷다보면 익숙한 캐릭터를 만나 웃음 짓게 된다. 야외 미술관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 발길을 멈추고 감상하게 된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면, 오랜 시간 관광지로 사랑받아온 전주 한옥마을은 어떨까? 상점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점점 상업화되어간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맑은 가을 밤, 전주 한옥마을은 옳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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