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인간관계가 힘든 당신을 위하여 : 관계의 심리학

“사람들 대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얼마 전 진료실을 찾았던 새내기 직장인이 사람들과 관계가 불편하다고 꺼낸 말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된 후, 이상하게 주변 사람들이 자꾸 의식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말문이 막히더라는 것이다. 처음엔 그러다 말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 대하기가 더욱 불편해지고, 주목받는 상황이 오면 움츠러들게 되었다고 한다. 급기야는 사람들 앞에서 얼굴이 금세 붉어지고, 말도 잘 나오지 않게 되었다. 자꾸만 인간관계가 어긋나고, 소극적으로 되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것이다.

인간관계는 사회 초년생들의 고민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타인과의 관계란 생존을 위한 필사적 노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자의든 타의든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한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학교나 회사에서의 직접적인 만남뿐 아니라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처럼 간접적이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도 연결된다. 우리는 이른바 ‘관계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관계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커졌지만, 원치 않는 이들과도 실시간으로 연결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인간관계로 인한 외적, 내적 갈등도 더욱 커지게 된다. 단언컨대, 인간관계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관계의 중요성이 커지는 환경을 유독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의 눈빛을 불편하게 느끼며,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늘 주눅 든 모습을 보인다.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라도 할 때면 얼굴이 빨개지고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타인과의 대화를 두려워하며, 사람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입는 사람들도 있다. 내 주변에 있는 지인, 가족 혹은 나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관계를 불편해 하는 이들에게 ‘소심하다’ 혹은 ‘수동적이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관계를 받아들이는 반응은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인간관계의 ‘스킬’을 다루는 방법들은 시중에 넘쳐나지만 정작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노력과 조금은 다른 것일 수 있다.

내가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가? : 자신의 스키마(schema)를 살피기
인간관계는 혼자 맺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계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타인의 탓으로, 혹은 우연히 벌어진 상황의 산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이를 심리적 방어기제 중 투사(projection)라고 한다. 투사를 자주 사용하면 일단 마음은 편하다. 타인의 탓이 100%라 여기면 자신을 향한 자책의 채찍을 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남 탓’은 관계에 숨겨진 이면을 볼 수 없게 하고, 결국 관계를 고통으로 이끌어간다.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자신과 관계를 맺은 상대방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자신이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관계의 초점을 상대방에서 자신의 내면으로 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별개로 같은 패턴의 문제가 늘 발생하는 경우라면,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던 습관에서 벗어나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 볼 필요가 있다. 나, 타인, 그리고 관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 자신의 시각을 살피지 않으면 왜곡된 관점들은 일상에 숨어버린다. 이는 자신이 노란빛 색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가 ‘세상은 원래 노란 것’이라 여기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제프리 영(Jeffrey E. Young)이 주창한 스키마 치료 이론(Schema therapy theory)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스키마라 지칭한다. 우리는 삶에서 겪는 모든 상황, 사건들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스키마라는 필터를 통해 여과된 형태로 마음에 담는다. 만약 자신에게 관계를 왜곡시키는 필터가 있다면 많은 상황 중 유독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집중 조명하여 우울함이나 불안,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 반응들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어떤 형태의 스키마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바라보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반복되는 인간관계 문제를 차단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성장 과정의 경험들은 뇌에 흔적을 남긴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자신이 지금껏 관계를 대했던 관점을 떠올려 보면 자연스레 그 시작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 그 뿌리가 성장과정의 경험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아기가 태어난 후 인생의 초반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격적 기질(temperament)이 아이의 감정과 행동 패턴의 결을 좌우한다. 이후 아이가 자라면서 성장과정의 경험들이 쌓이며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frame)이 형성된다.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때를 생각해보자. 페달을 움직이고, 몸의 균형을 잡고, 원하는 방향으로 핸들을 움직이는 모든 과정이 낯설고 불안하다. 하지만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뇌는 일종의 패턴을 만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전거를 타는 방법에 대한 틀을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스키마는 인간이 상황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 가운데 하나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처리하는 것이 에너지 소모가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성장환경에서 왜곡된 틀이 우리 삶에 자리 잡는다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관계와 관련해 경험했던 불안, 분노와 같은 강렬한 감정적 기억들은 우리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 안에 자리한 편도체(amygdala)에 깊게 저장된다. 삶의 행복했던 대인관계 경험들은 건강한 성장과 자존감의 든든한 바탕이 된다. 하지만 학대나 따돌림과 같은 끔찍하거나 피하고 싶었던 관계의 상처들이 편도체에 저장되어 있다면, 이것들이 의식의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강렬한 느낌으로 재현될 수 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사회적인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고통을 무의식적으로 상기하며, 고통스러운 관계의 패턴이 반복된다. 편도체에 남은 타인에 대한 강렬한 감정들이 관계 자체를 왜곡해 바라보는 스키마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관계에서 오는 불안, 극복을 위한 3가지의 알아차리기(awareness)
긴 시간 동안 형성된 관계에 대한 스키마는 몸과 마음에 익은 습관과 같다.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간다.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 첫걸음을 떼는 일이다. 자신의 삶에서 타인과의 관계가 늘 불편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알아차리기(awareness)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알아차리기란 1) 자신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만 아니라 2) 관계가 어려웠던 근원적인 뿌리를 알아보려는 노력 3) 관계를 대하는 이 순간 내가 겪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내 삶에 드리워진 스키마의 그림자를 알아챌 수 있게 한다.

내가 가진 인간관계에 대한 스키마의 윤곽이 드러나면, 이제는 이에 대한 패턴을 깨는(pattern-breaking) 단계가 필요하다. ‘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매 순간 관계를 대하는 나를 살펴보자. 처음에는 여전히 관계를 맺는 순간에 과거의 패턴을 답습하는 나 자신이 보일 것이다. 그 순간을 의식하고 집중해 알아차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관성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편도체에 새겨진 감정적 기억들이관계의 매 순간 활성화되어 과거의 나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타인과 관계할 때의 나를 바라보려는 반복적인 노력이 과거부터 만들어진 습관이라는 두꺼운 벽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알아차리는 것(awareness)은 인간관계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이 겪는 고통이 어떤 범주에 속해 있든, 성장 과정에서 겪은 경험들의 영향과 그로 인한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리려는 노력은 막연하고 어렵게만 느껴졌던 불편함의 대상을 명료하게 하며, 그 순간의 자신을 조금은 거리를 두고(distancing) 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 왔던 문제가 바로 이 지점에서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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