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명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 프란시스코 고야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Lucientes)는 1746년 스페인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 동북부 아라곤 지방의 사라고사로 이주해 가톨릭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4살부터는 지역 종교화가인 호세 루산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고야는 스페인 출신 화가를 양성하는 왕립 아카데미 입학을 시도했지만, 그 시도는 좌절되고 만다. 24세가 되던 해 고야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몇 년 뒤 사라고사로 돌아와 종교화를 그렸다. 1774년 고야는 왕립 태피스트리 공장의 부름을 받고 마드리드에 도착한다. 특유의 섬세함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고야의 그림은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림 주문이 끊이지 않게 된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 1800년~1801년 (출처: Wikimedia Commons)

고야는 마흔 살에 카를로스 3세의 화가가 되었고, 1789년에는 카를로스 4세의 수석 궁전 화가가 되는 영광을 누린다. 고야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을 살펴보자. 그림 속 인물들은 스페인 왕실의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왕족다운 기상이나 위엄은 찾아볼 수 없다. 고야는 왕족의 입맛에 맞춰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붓으로 권력자의 무능과 타락을 여실히 드러내는 쪽을 선택했다. 고야는 그림 왼쪽에 자신을 그려 넣었다. 화려한 무대 옆으로 비켜나 있는 냉담한 그의 모습에서 왕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고야는 이 그림을 통해 인물들의 외양뿐 아니라 내면까지 꿰뚫는 통찰력을 지닌 작가라는 찬사를 듣게 된다.

<자화상> 1795년 (출처: Wikimedia Commons)

한편 고야는 1792년 콜레라에 걸려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게 된다. 건강이 회복되면 청각도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고야는 청각상실에 머리가 울리는 증상에 시달리면서 신경쇠약까지 얻게 된다. 1795년에 그린 <자화상>은 고야가 청력을 잃고 난 뒤 몇 년이 지난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어두운 배경에 찡그린 표정까지, 그림 속 고야는 한없이 고독해 보인다.

고야의 청각을 앗아간 콜레라는? 
콜레라는 감염에 의한 급성 설사 질환으로, 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된다. 중증의 탈수가 빠르게 진행되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고야가 살던 19세기 유럽에는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유행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최근에는 콜레라 환자가 많이 감소해 2017년 콜레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124명이다.

전쟁의 참상과 청력의 상실을 겪으면서 고야의 그림은 한층 어두워져 간다. 고야의 후기 작품들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1799년 고야는 에칭 기법으로 그린 판화집 《카프리초스(Caprichos, 변덕)》를 발표한다. 판화는 괴물과 악마가 등장하는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고야는 이 판화집에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라는 부제를 붙였다.

   
<변덕들 (판 52)> 1799년, <변덕들(판 75)>. 19세기 초반 (출처: Wikimedia Commons)


모든 문명사회는 수없이 많은 결점과 실패로 가득 차있다.
이는 악습과 무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이기심으로 인해
널리 퍼진 편견과 기만적 행위에 의한 것이다.

고야는 전쟁의 참상을 담은 판화집 《전쟁의 재난》을 제작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스페인 왕정에 복귀했지만 이미 왕가의 신임을 잃은 상태였다. 고야는 ‘귀머거리 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외딴 집에 머무르며 《검은 그림》 연작을 남긴다. 이 연작 중 유명한 그림은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이다. 사투르누스는 대지의 여신으로부터 “자식들에게 지배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자식들을 차례로 잡아먹었다고 한다.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 1819년~1823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로코코 풍의 왕족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 궁정화가였던 고야는 전쟁과 청력 상실의 충격을 겪으며 화풍이 변했다. 그의 후기 그림에는 공포와 절망만이 담겨 있다. 그리고 1828년, 고야는 82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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