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의 노트] 대구, 근대의 역사를 담다

대구(大邱)는 ‘큰 언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순 우리말로는 달구벌이다. 지명처럼 대구는 동북쪽으로는 팔공산이, 남쪽으로는 비슬산 언덕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 지형이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대구는 6.25전쟁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았다. 전쟁 전후의 생활상이 비교적 잘 유지되어온 대구에는 근대문화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대구 시내 골목을 걷다보면 여전히 살아숨쉬는 우리의 근대사를 마주하게 된다.

대구 근대골목
대구 중구는 겉으로 보기에 여느 도시와 별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도심 골목길로 발길을 옮겨 천천히 걷다보면, 콘크리트 도심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근대문화 유적들을 만나게 된다. 대구의 근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근대골목투어’ 중 짧지만 볼거리가 많은 2코스를 따라 걸었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대구 약전골목이다.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36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해온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 자금조달과 연락거점 역할을 했다. 일제의 탄압으로 1941년 폐지되었다가, 광복 후 재개했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으로 다시 폐지되었다가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에는 오래된 약재상들과 신식 커피숍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저 멀리 대형백화점도 보였다.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어우러져 생경한 풍경을 만들어 냈다.


△ 약전골목 초입에 위치한 교남 YMCA와 대구제일교회 본당.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은 예스러운 매력이 가득하다.

약재상마다 가판대에 오미자, 구기자, 야관문 등의 약재가 쌓여있었다. 그중 한 곳에 들어가자 쌉싸름하면서 들큰한 한약재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인상이 좋은 주인아저씨의 이름은 강희수, 이곳에서 약재상을 운영한지는 약 25년 되었다. “70년도 무렵부터 남성한약방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약재상을 운영한 건 90년도 즈음이고요. 옛날에 이 골목은 전부 한약방과 약재상이었어요. 전부 기와집이었죠. 그 시절엔 이 골목으로 버스가 다닐 정도로 중심도로였어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요.”

아저씨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었는지 물었다. “약재상이다 보니 오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이에요. 가장 연세가 많았던 분은 103세이셨죠. 지팡이도 안 짚고 꼿꼿하게 걸어오세요. 어느 날은 그 어르신이 친구 분과 함께 오셔서 “우리 아이가 감기에 걸렸으니 감기에 좋은 약재를 달라”라고 하셨어요. 아이라니까 손주를 말하는 줄 알았죠. “아이가 몇 살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옆에 친구 분을 가리키며 “이 놈이 우리 집 큰놈이요”라고 하셨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 같은 분을 앞에 앉혀놓고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었던 거예요. 당시 자제분도 연세가 82세셨거든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아저씨가 내어준 따뜻한 쌍화차 한잔에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약전골목에서 나와 길을 걸었다. 어둑해지는 무렵이었다. 하늘 높이 솟은 첨탑 2개가 눈에 띄었다. 계산성당이다. 과거에 대구는 박해를 피해 천주교도들이 모여든 곳으로, 그 중심에 계산성당이 있었다. 계산성당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1899년 세 번째로 지어진 고딕양식의 성당으로, 대구와 경북지역 카톨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 도심 속에 우뚝 솟아있는 계산성당과 3.1만세운동길

길 건너편에 계산성당과 비슷해 보이는 화려한 고딕양식의 첨탑이 다시금 눈에 띄었다. 1893년 베어드 선교사가 대구 선교를 하면서 설립한 대구제일교회였다. 이 교회는 대구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로, 대구의 수많은 교회 중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밖에도 근대골목투어 2코스를 따라 걷다보면, 개화기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 3곳과 대구 학생들이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던 3.1만세운동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항일문학가 이상화 시인 고택과 국채보상운동의 주역 서상돈 고택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서문야시장
밤에는 서문야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에 형성되어 ‘대구장’으로 불리던, 국내 3대 장터 중 한 곳이다. 현재는 섬유 원단으로 유명하며, 한복부터 각종 의류, 액세서리와 그릇, 청과, 건어물 등 없는 것이 없는 시장으로 통한다.

이곳은 밤이 되어도 불빛이 반짝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야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대구 막창부터 삼겹살 김밥, 라면핫도그, 바비큐 육포 등 이색 먹을거리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장사하는 청년들의 열정과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시끌벅적함이 어우러져 야시장만의 풍경이 만들어진다.


△ 대구는 찜갈비도 유명하다. 동인동 찜갈비 골목의 시작은 1970년대이다. 인근 노동자들을 위해 식사 겸 술안주로 양은냄비에 소갈비와 고춧가루, 마늘을 넣고 연탄불에 조린 찜갈비를 내었다. 이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현재의 찜갈비 골목을 형성하게 되었다.

김광석 다시그리기길
대구를 찾는다면 ‘김광석 다시그리기길’도 꼭 가봐야 한다. 이곳은 주옥같은 명곡을 숱하게 남기고, 짧지만 뜨겁게 살다간 대한민국의 대표 싱어송라이터 김광석을 기리는 곳이다. 350미터 가량 이어진 골목 담벼락에는 김광석의 삶과 노래를 주제로 한 벽화가 가득하다. 벽마다 천진난만하게 사람 좋은 표정을 한 김광석이 활짝 웃고 있다. 벽에 쓰인 그의 노래 가사를 읽어보았다. 젊은 나이에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들어낸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감탄스럽다. 잠시 멈춰 서서 ‘노래하는 철학자’라 불렸던 그의 생을 상상해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할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잘 보존되어있는 대구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며 잊고 지내던 우리 역사에 대한 재인식은 물론 먹을거리와 풍경까지, 뜻 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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