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소리] 공포, 위기 상황을 알리는 마음의 비상등

‘공포’는 우리 삶에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반인륜적인 사건을 접했을 때는 경악스러운 공포를 느끼고, 여름에 쏟아져 나오는 공포영화를 볼 때는 서늘한 공포를 느낀다. 또 자이로드롭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때는 재미있지만 오싹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공포’를 느끼는 순간에 동반되는 공통적인 증상이 있다. 오금이 저리고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등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생리적 증상이 그것이다.

공포의 재정의
공포가 동반하는 증상 때문에 우리는 공포라는 감정을 불편해하고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공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공포는 생존을 위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본능이다.
실체가 확실하지 않은 물체를 봤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조심스레 접근한다. 인류의 조상들 역시 그러했기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름으로 역사책에 기록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인류의 조상들이 아프리카 초원 끝에 꾸물대는 희미한 그림자에 ‘호기심’으로 접근했다면 인류는 이미 멸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포는 우리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경고등이다. 공포 상황이 되면 몸에 비축된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호흡량이 늘어 많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를 가슴, 허벅지와 같은 주요 근육으로 공급한다. 즉, 공포라는 감정은 위기의 순간에 적절하고 빠르게 대처하도록 우리 몸과 마음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모든 공포와 불안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임을 인지하고 이를 피하려 하기보다는 삶에 통합하려 노력해야 한다. 공포가 마음을 엄습했을 땐 그 원인을 살피고, 공포가 일으키는 불편한 감정이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 좋다.

공포증의 개별성
사람마다 뛰어난 부분이 다르듯 취약한 부분 또한 모두 다르다. 유독 대인 관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발표를 앞두고 큰 불안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사람은 이런 취약함이 일시적이거나 강도가 강하지 않아 그 상황만 지나가면 일상적인 컨디션을 되찾는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특정 대상에 이성을 잃고 비합리적인 수준의 극심한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일상생활, 대인관계,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가 심각한 상태를 ‘공포증(특정 공포증, specific phobia)’이라고 한다. 폐소(좁은 곳)공포증, 고소공포증, 곤충공포증 등 공포증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사물과 상황에 ‘공포증’이란 단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심지어 뾰족한 샤프심을 보고 느끼는 ‘첨단공포증’, 동그란 구멍이 모인 그림이나 사진을 보면 소름이 돋는 ‘환공포증’도 존재한다. 인간의 내적 경계심 영역은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하다.
공포의 대상은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모든 사람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보편적이지 않은 대상에 공포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동정심을 느끼기보단 의아해하곤 한다. 같은 대상을 보며 한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공포에 떨고, 다른 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다. 덕분에 공포증 환자는 종종 문학이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공포증의 원인
공포증의 발생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과거에는 한 인간의 심리적 토대가 형성되는 성장 환경에서의 경험,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정신질환의 유일한 원인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뇌와 신체의 상호작용을 포함하는 생리적 요소와 인간을 둘러싼 사회·문화적인 기반들 또한 정신질환의 발생 원인이 될 수 있음이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공포증의 원인은 ‘알 수 없다’, ‘너무 많은 요소가 관여하기 때문이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공포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의 발생을 단순하게 표현한 모델이 Stress-diathesis model(스트레스-소인 모델)이다. 유전적으로 불안에 취약하고 스트레스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성장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트라우마가 생기면 마치 타고 남은 불씨에 다시 불이 붙는 것처럼 정신질환이 표출된다는 의미다.
공포증의 양상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떨어질 수 있어’라며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높은 곳은 정말 위험하구나’ 하고 고소공포증을 학습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한창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에 우연히 징그러운 벌레를 보고 느꼈던 무력감과 공포가 마음에 극복할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공포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공포증,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1) 약물치료 : 특정 공포증으로 심한 불안을 느끼고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면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신과 약물치료에는 주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흔히 말하는 신경안정제)가 사용된다. 현재의 불안을 경감시키고 불안 대상에 대한 감수성을 줄여 공포증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특정 공포증에는 다른 기분 장애나 불안 장애와 달리 장기적인 치료보다 단기적 치료에 집중한다. 공포 대상을 마주치는 경우 외에는 일상생활에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약물 투여로 발생할 수 있는 약물 오남용이나 금단, 내성의 문제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2) 비약물 치료 : 특정 공포증에서 치료 성과가 명확해 먼저 고려하는 치료 기법은 체계적 탈감작(systematic desensitization) 기법을 포함한 행동 치료다. 체계적 탈감작은 불안 대상에 대한 직면 강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 공포에 익숙해지는 인내심 훈련이다. 원리가 단순해 불안감이 크지 않은 대상을 상대로는 혼자 시도할 수 있지만 혼자 해내기는 쉽지 않다. 불안이나 공포가 심해지면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거나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가 동반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엔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과 추가적인 약물치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환공포증 환자의 경우 공포증 대상을 연상하게 하는 글이나 그림을 가장 약한 자극부터 시작해 그 자극에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쳐다보도록 한다. 처음에는 10분, 그다음 20분, 좀 더 익숙해지면 30분, 이런 식으로 시간을 늘려간다. 공포의 순간 느끼는 감정의 양상과 견뎌낸 시간을 기록하는 방법은 이성과 감정의 중심을 잡아준다. 인간의 몸이 불안을 감지하고 반응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파도와 같아서 잠시 강렬하게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불안과 공포를 견디는 과정에서 두려움과 신체 반응이 파도처럼 밀려오지만 이내 가라앉는 시기가 분명히 온다.
공포증을 가진 이들에게는 바로 그 첫 경험이 중요하다. 치료는 불안의 아주 작은 단계부터 조금씩 밟고 올라가는 과정을 거친다. 불안 자체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공포의 대상을 견디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목표다. 시간이 걸리지만 공포의 대상은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으며 특정 대상 때문에 자신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공포에 대한 인식도 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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