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명화] 빛과 어둠의 극적인 조합, 렘브란트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Harmensz van Rijn)은 1606년 네덜란드 서부 도시 레이던에서 태어났다. 방앗간 집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영민함을 보였다. 14세 때 명문 학교인 레이던 대학에 입학했지만 렘브란트는 공부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그는 역사화가인 야코프 이삭스존 반 스바넨부르크와 페테르 라스트만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하며 그림을 배운다.

1626년 렘브란트는 아틀리에를 열고 자화상을 주제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1632년에는 암스테르담 의사조합의 위촉으로 그린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로 큰 호평을 얻게 된다. 그림을 살펴보면 해부학을 강의하는 튈프 박사 주위로 7명이 청강생이 모여 있다. 튈프 박사의 진지한 표정과 청강생 7인의 각기 다른 표정에서 순간을 포착한 듯 자연스러운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와 같이 단체에 소속된 여러 인물들을 한 캔버스에 그리는 ‘단체 초상화’는 네덜란드 회화의 고유한 장르에 속한다.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 1632년 (출처: Wikimedia Commons)

1634년 렘브란트는 명문집안의 딸 사스키아 판 오일렌부르크와 혼인을 하고, 암스테르담에서 제일가는 초상화가로 명성을 얻게 된다.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 사랑하는 가족까지 모두 갖게 되었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첫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본지 2개월 만에 사망한 것이다. 다시 예쁜 아이를 얻었지만, 그 아이마저 세상을 떠난다.

한편 렘브란트는 1642년 단체 초상화를 주문받아 <야간순찰>을 그린다. 이 그림은 현재 네덜란드의 국보급 그림이자 렘브란트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이 그림을 완성했던 당시의 사정은 달랐다. 그림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가운데 몇 몇 인물을 제외한 나머지는 얼굴에 약간의 조명만 받은 채 어둠속에 묻혀있다. 심지어 팔로 얼굴이 가려져 눈만 보이는 인물도 있다. 그림의 주변부에 등장한 민병대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초상화는 민병대원들의 자신의 영웅적 활동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각자 돈을 모아 주문한 것이었는데, 정작 자신의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으니 말이다.

<야경> 1642년 (출처: Wikimedia Commons)

이 그림으로 렘브란트의 명성은 추락했지만, 요즘에 와서 이 그림은 렘브란트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인물들을 줄 세워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저마다의 행동을 나타낸, 역동적인 방식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평면 캔버스 안에서 렘브란트는 움직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후 렘브란트의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그의 아내 사스키아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화가로서의 명성을 동시에 잃은 렘브란트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두 번째 부인 헨드리케를 만나 창작활동을 이어가지만, 살림살이는 날로 어려워져 갔고, 그는 심한 우울감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1662년 헨드리케마저 세상을 떠나고, 1669년 렘브란트는 초라한 집에서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로이 죽음을 맞이한다.

<34세의 자화상> 1640년, <63세의 자화상> 1669년 (출처: Wikimedia Commons)
렘브란트가 앓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울증은?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과 공허, 무기력, 불면, 집중력 저하 등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될 때 우울증이라고 진단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년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인원은 68만 169명이다. 3년(2015년~2017년) 간의 통계를 보면 47만 9,017명(13.1%)이 증가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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